일본 산업계에서 부메랑 효과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였다. 우리나라에 핵심 기술과 부품을 마구잡이로 넘겨줄 경우, 나중에 우리나라가 유력한 경쟁자로 등장할 것이라는 맥락에서였다. 당장 기술 이용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 우리와의 기술 협력은 득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장기적으로 우리 기업들을 유력한 경쟁자로 키워주게 된다는 뜻이었다. 마치 호주 원주민들이 던지는 부메랑처럼 결국은 되돌아온다는 의미에서 쓴 용어였다. 그런 경계심이 도움이 돼서였을까? 오늘날 우리 기업은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경쟁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여전히 핵심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은 일본의 기술과 부품에 크게 의존 한다. 그 결과 우리 기업이 해외에 물건을 많이 팔수록 일본 기업이 득을 보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요즘 석유화학 업계에서도 이 부메랑 효과라는 말을 많이 한다. 지난 세기 일본 기업이 우리 기업에 대해 했던 말을, 이제 우리 기업이 중국 기업에 대해 한다. 실제로 1980년대 무렵부터 우리 석유화학 업체들은 석유화학 설비와 기술을 중국에 많이 넘겨줬다.
당장 어마어마한 금액의 설비·기술 판매료가 굴러들어왔다. 업계에서는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왔다며 이 횡재수를 반겼다. 그런데 그 대가를 요즘 치르기 시작하고 있다. 중국의 석유화학 업계가 우리 경쟁자로 등장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전세계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우리 석유화학 업계와 1960년대의 일본 산업계가 다른 점도 있다. 우리 상황이 더 나쁘다는 사실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핵심 기술 유출에 대해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이 스스로 던진 부메랑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손으로 잡았다면, 우리는 우리가 던진 부메랑에 뒤통수를 맞게 된 격이다. 더욱이 부메랑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분야도 석유화학 산업 하나만이 아니다. 거의 전 산업에 걸쳐 부메랑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가전 산업과 반도체 산업, 심지어는 자동차 산업에서도 이런 징후는 뚜렷해지고 있다.
물론 우리 기업의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핵심 기술과 부품, 그리고 설비의 판매를 꺼리고 있다. 그러자 중국의 대응법도 달라졌다. 기술 인력을 매수 혹은 스카우트 하는 불법이나 편법도 서슴치 않는다. 이런 경로가 봉쇄되기 시작하자 기업을 통째로 사들이는 방식도 구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상하이차그룹은 카이런을 비롯한 몇몇 쌍용차 모델의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심지어 이에 반대한 우리나라 경영진들을 교체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급기야 이 문제는 노사 분쟁의 핵심 쟁점이 되기도 했다.
중국뿐만 아니다.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인도도 요주의 대상이다. 이 나라 역시 우리가 시장 선점에 관심을 가진 만큼 훗날 부메랑 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에 대해서도 기술을 넘겨줄 태세다. 당장 매각이 예정된 대우일렉트로닉스(옛 대우전자)의 우선협상 대상자가 인도의 비디오콘사다. 대우일렉토로닉스는 가전제품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해외 판매망을 확보하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전철을 되밟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 후발 공업국인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 역시 부메랑 효과의 희생자다. 국제 분업의 원리에 따라 후발 주자들에 기술을 넘겨주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같은 나라는 우리나라 같은 후발 주자들이 경제적으로 발전할수록 더 큰 덕을 본다. 핵심 기술과 부품을 모두 넘겨주지 않고 잘 관리해온 덕이다. 우리가 중국이나 인도에 대해서 기술 유출 관리를 잘 해야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서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 또한 기술 유출 관리를 국가정보원의 핵심 기능 가운데 하나로 삼아야 한다.
종합적인 기술 유출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일본이 우리에게 누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재주 피우는 곰과 실속 챙기는 사람이 따로 있는 방식이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중국이나 인도라는 곰에 쫓기다 그들의 억센 발톱에 다칠 일만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