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모 TV 밤 9시 뉴스. 오프닝 멘트는 '청소년 게임 중독'이다. 앵커 모 씨가 "국내 25세 미만의 청소년 중 80%가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고, 그 중 10%가 중독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며 자못 심각한 표정이다. 이어 현장 리포터가 나와 일부 청소년들이 현실과 게임을 구별치 못하고 게임 속 폭력을 현실에서 휘두르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 후 새벽 1시경. 학원에 다니는 중고생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쯤, 그 TV에서 낯선 프로를 시작한다. 알고 보니 각종 게임을 중계하고, 해설하는 프로다. 이럴 수가? 싶었다. 과연 이 시간에 이 프로를 보고 즐길 계층은 누구일까? 마치 중고생들에게 "여러분, 마침내 부모님들이 주무실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들 세상, 게임 천국입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돌을 씹어도 소화해 낼 것 같은 학생들 가운데 일부가 오전 수업 첫 시간부터 병든 닭처럼 꼬박꼬박 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룻밤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시청자에게 병도 주고, 약도 주던 그 TV는 요즘 사행성 게임 보도에 열을 올린다. 대상이 어른이라는 점만 달라졌지, 앵커와 리포터가 세태를 개탄하는 듯한 태도는 여전하다. 집을 잘 지키는 개를 폐견(吠犬)이라 한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희생정신이 그 덕성이요, 짖는 것이 업이다. 그런데 폐견이 폐견답지 않게 식견(食犬)이나 전견(田犬)처럼 주인이 바뀔 때마다 꼬리 흔들기에 바빴거나, 도척을 창호에 비친 나뭇가지 그림자로 여겼거나, 하라는 사냥은 않고 공연히 가축만을 물어뜯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온 동네가 시끄럽다. 개들이 모두 나와 짖기 때문이다. 짖어야 할 때는 짖지 않다가 한 마리가 짖으니 너도너도 덩달아 짖어대 잠을 이룰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차라리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다. 개가 짖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예민한 후각과 청각으로 이 시대의 도척을 가려내기는커녕 매양 달을 보고 다함께 짖어서는 말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