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훈 인천발전연구원 도시경영연구위원
한·미 FTA 추진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찬반 양쪽에서 많은 주장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지만 전문가들마저 의견이 엇갈리니 한·미 FTA 추진 및 중단 사이에서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예상되는 득과 실을 나열하는 것만으론 찬반 양쪽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논지를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설득력있는 답을 얻을 순 없다.
득실의 총합을 봐야 하는데 이는 쉬운 과제가 아니나 개략적으로 추론해 보자.
어차피 정치한 모델이라고 더 나은 답을 주는 것도 아니다. 산업을 크게 구분하면 농수산업, 제조업, 서비스업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농업 부문에 피해가 있으리란 점에 대해선 이견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의 대미수출 근간을 이루는 제조업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미국시장의 제조업 분야 무역장벽이 그다지 높지 않으므로 한국 제조업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리란 주장도 있지만 한국의 농어업 분야 산업 비중이 3% 대로 극히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농어업 분야의 피해가 과장되게 인식되고 있을 가능성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미 여건이 어려운 농업 분야의 피해는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제조업체에도 그 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일단 서비스산업은 논외로 하고 미국 농산물과 중국 농산물의 대체관계와 경제학의 비교우위론을 감안하면 제조업 분야의 이익이 농업 분야의 피해를 상쇄하고도 남을 가능성이 많아 한·미 FTA의 장점이 커 보인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무역의 이익이란 교역을 통해 모든 경제주체가 이익을 얻는다는 게 아니라 일부의 이익이 다른 일부의 피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농업 부문의 피해에 대해선 시장이 저절로 보상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농업 분야의 피해를 어떤 방식으로 보상해야 하는지는 우리가 국내에서 해결할 문제이지 한·미 FTA를 통해 처리될 문제는 아니다.
무역이론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원론적으론 무역장벽을 낮추는 FTA는 바람직한 것이고 한·미 FTA도 예외는 아니다.
자유무역에 비판적인 무역이론도 있고 상식적 입장에 기초해 개방에 비우호적인 주장도 있었지만 역사적 경험을 보면 자유무역의 효율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 한·미 FTA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핵심이유 중 하나는 국내 서비스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주장이 크게 엇갈리기 때문일 것이다.
서비스산업을 고차 서비스산업과 단순노동력에 의존하는 서비스산업으로 양분해 본다면 후자의 영향은 제한적이다. 미국인들이 일하러 오지도 않을 것이고 멕시코로부터의 이주자가 폭증하는 미국에 한국인들이 갈 이유도 별로 없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은 경우가 다르다.
이 분야의 경쟁력은 압도적으로 미국이 우위에 있다. 비교우위론에 의하면 한국은 미국에 서비스시장을 내주고 제조업에 특화를 해야 할 것이지만 이것은 우리의 묙표가 아니다.
정부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서비스산업이 중요하다고 보고 개방을 통해 그 동안 과보호 상태에 있던 서비스산업의 경쟁이 심화되고 이를 통해 국내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이 제고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비교우위에 의한 효율이 아니라 경쟁에 의한 효율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분야 역시 물품이 아니라 사람이 핵심이 되므로 미국기업이 진출한다고 해도 미국인들이 모두 이주해 와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한국인들이 일하게 되고 이들이 쌓은 노하우는 우리 자산이 된다. 이들이 독립해 창업을 하기도 하고 국내 기존 업체의 체질이 개선될 수도 있다.
한·미 FTA로 크게 진전될 서비스산업의 개방은 기본적으로 제도와 사람의 문제다.
과거 경험을 보면 유통시장처럼 체질 개선의 계기가 된 적도 있고 문민정부의 금융분야 세계화 정책처럼 우리 역량이 미흡해 큰 부작용을 낳은 적도 있다. 마냥 문을 닫은 채 우리끼리 잘해 보기만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기대다.
관건은 개방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어떤 속도로 하느냐일 것이다.
따라서 한·미 FTA는 추진 여부가 아니라, 정부가 어떻게 협상을 추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사전 준비기간이 짧지 않았냐는 국민들 우려를 감안해서라도 한·미 FTA의 조기 체결이 목표가 아니라 한·미 FTA에 우리가 원하는 내용을 얼마나 담아내느냐를 중시해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