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객원논설위원
 조선왕조실록에 ‘인민(人民)’이란 단어는 있어도, ‘민족(民族)’이란 단어는 없다. 그런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사서에도 마찬가지다. ‘민족’이란 개념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근대 유럽에서였고, 약소국들이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대항하여 내세운 사회 공동체적 표상이 또한 ‘민족’이었다.
‘민족’은 그 무렵의 국제 키워드였다. 3ㆍ1 운동의 정신적 배경의 하나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였다. 그러나 그 내부에 에너지를 축적시켜 나가던 민족들은 어느 임계점에 이르러 걷잡을 수 없는 대폭발을 일으키곤 했었다.
동서고금에 일어난 전쟁의 대부분이 ‘민족 분규’라는 발화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그 예라 하겠다. ‘게르만’의 우수성을 입증하려고 우생학적 해프닝을 벌였던 히틀러가 아우스비치에서 ‘인종 청소’를 벌였던 것도 그렇고, 그러한 참절비절을 겪었던 유태인들이 오늘에 와서 레바논을 무차별 공격한 것도 모두 잘못된 민족의식이 낳은 비극이다.
한 민족이 선민의식(選民意識)에 빠지는 순간 그 ‘민족’은 배타적이 된다. 그리고 그 열풍에 휩쓸린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흔한 상식을 뛰어넘는 광기(狂氣)를 나타난다. 심지어는 신화(神話)도 실재한 현실(現實)이었다고 강변하기가 일쑤다.
우리 사회에서도 ‘민족’이 키워드가 된지는 오래다. 일제하 독립운동 이후 더욱 공고화된 ‘민족’은 신성불가침한 영역이었다. 만사에 ‘민족’을 표방하지 않고서는 정당성을 보장받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현실을 진단하는 시약도 ‘민족’이요, 처방도 ‘민족’이 된 것이다.
최근 서울에서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이 있었다. 공원의 이름은 ‘용산민족역사공원’으로 약칭 ‘민족공원’이라 했다. 그냥 ‘용산공원’이라 해서는 뭔가가 마뜩치 않았던 모양이다. 정부는 결국 용산공원을 꽃이 만발하고 새들이 노래하는 순수 자연 공간보다는 ‘민족의 자주 논리’를 체험하는 이념 공간으로 만들 요량인 것 같다. 그 같은 발상이 자유공원에서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자는 논리와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것은 번연한 일이다. 바야흐로 공원의 수난시대까지 도래한 듯하다.
  / 조우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