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가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지난 주(6. 15~17) 스페이스 빔에서는 제3회 옥상영화제가 열렸다. 이번 영화제는 ‘주색(酒色)잡기’, ‘신애마(新愛馬)천국’에 이어 ‘슈퍼스타’란 부제를 달았다. 슈퍼스타란 역설적으로 우리들 자신과 각자의 마음  속에 간직된 영웅을 의미한다. 너무도 인간적인 그래서 인생이라는 커대란 무대에선 조명 받지 못했지만 우리들 기억 속에 영원히 간직될 ‘휴먼스타’인 것이다. 이로써 몰개성적이고 무비판적인 쏠림을 견인하는 자본의 ‘스타’로부터 벗어나 이에 대항하는 소수적 관점의 다양한 주체들을 우리는 ‘슈퍼스타’라 명명할 수 있다.
 영화제는 도심 속 3층 건물 35평 남짓한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하절기 옥상이라는 공간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 해마다 영화제를 개최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문화공간의 창조와 재발견이라는 철학적 지향과 실험이 있었다(이와 관련해서는 ‘문화도시 문화복지’ 2005. 7월호 졸고 참조). 물론 이것은 스페이스 빔이라는 대안공간의 운영철학을 하나의 활동으로 드러낸 것이다. 스페이스 빔은 다양한 개별주체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주체들 상호 간의 소통과 느슨한 연대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런 공간 운영과 맥락 하에서 영화제의 기획과 진행은 주체의식과 자발성이 큰 역할을 했다. 영화제의 기본 컨셉은 주최와 관객을 이분(二分)하지 않음으로 함께 어우러지고 즐길 수 있는 장을 연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불가피하게 영화제의 책임 있는 기획과 진행이라는 현실적 구분이 있다면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다.
 영화제는 크게 파티와 공연, 단편과 장편영화로 구성되었다. 파티는 요일별로 각기 다른 그룹에서 자발적으로 먹을거리를 준비해 주었고 이를 옥상에 모인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분위기를 풀어냈다. 공연도 총 다섯 팀의 젊은 뮤지션들이 이런 저런 네트워크로 참여해 축제를 함께 즐겼다. 단편영화 역시 젊은 영화감독과 영화패들이 기꺼이 이전 작품을 공개하기도 했고 이번 영화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하기도 했다. 또 스텝으로 참여해 땀을 흘리기도 했다. 여기에 지역매체에서 영화제 소식을 접한 한 매니아는 음향장비와 스크린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와 지원으로 영화제는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사례를 한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그럴 예산이 없었다.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주최가 되어 함께 하는 영화제가 될 수 있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규모 응원물결이 휩쓸고 간 거리와 운동장 곳곳은 난장판이 되었다고 한다. 산더미 같은 쓰레기, 공공기물의 파손, 절제를 잃은 폭죽과 차량 경적, 심지어 성추행까지 시민의식은 그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2002년 선수들의 신화창조에 붉은악마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응원단은 폭발적인 응원과 시민의식으로 화답했었다. 수십만의 인파가 머물다 간 자리는 스스로 청소함으로써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이런 모습은 해외언론에 소개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왜 이런 차이를 드러내는 것일까? 많은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요소로 축제의 주체라는 참여의식과 자발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2002년과 달리 이번에 우리는 주최국(민)이 아닌 참가국(민)이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대규모 응원단과 시민은 이동통신 등 거대자본의 치열한 마케팅 싸움에 말려든 타겟(target)이 되었다. 여기에 방송사를 비롯한 언론의 과잉으로 물리적 강제는 없더라도 심리적 강박과 편집증에 시달리고 있다.
 크든 작든 축제의 성공은 참여자들의 참여의식과 자발성에서 있다. 다양한 주체들이 축제의 주인으로서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에만 충만한 일탈도 행복한 제의도 가능할 것이다. 자본이든 언론이든 그 어떤 것으로부터 대상화 될 때 진정한 축제는 없다./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