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경안동 노종식
의료산업화 논쟁이 뜨겁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인구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의료산업분야가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과 더불어 많은 일자리와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의료산업화를 주장 하는자들은 말한다. 의료산업화란 국민 의료를 시장에 맡겨 상품화 해서 돈을 벌어보자는 것이다. 핵심 정책은 영리 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도입이다.
정부 경제부처 일각에서는 현재의 건강보험은 재정적 한계로 보장성 수준이 미흡하기 때문에 국민의 높아져 가는 의료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고, 자본집약적이고 노동집약적인 의료서비스산업은 고용 유발효과가 매우 커 국가 미래산업 발전 차원에서 새로운 제도가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기존의 건강보험상품으로는 더 이상 빼먹을게 없어 고심하던 민간보험사들 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 타이밍이 절묘하다.
여러 보험사들은 민간보험도입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발 빠르게 관련 상품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발 더 나가 대담하게도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국민의 ‘질병정보’를 자기들에게 제공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알기로 ‘질병정보’는 부부라도 본인의 승인 없이는 비밀로 하고 있다는데 돈 버는 일에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가 보다. 실재 모 의원은 이와 관련된 입법 발의까지 했다가 강력한 여론에 부딪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시장개방화 시대에 건강보험을 보충하는 형태의 민간의료보험 도입은 의료분야의 신기술개발 효과와 선택적 고급의료수요 충족 측면에서 일면 긍정적인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의료기관이 OECD 주요국가의 15~30%에 불과한 열악한 환경에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신중하지 않으면 자칫 공공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기존의 국민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부담하고 혜택은 필요에 따라 평등하게’ 받아 왔지만 민간보험이 도입되면 ‘구매할 능력에 따라 혜택 수준이 결정 되는 것’으로 이것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을 바꾸겠다는 의미이다.
세계에서 국민의료를 민간보험에 맡기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물론 프랑스, 독일 ,칠레 등에서도 시행되고는 있지만 그 형태는 미국과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의 의료보장정책은 그동안 여러 검증을 통해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되어 있다.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2003년 현재 전 국민의 15.6%인 4천500만 명이 의료보장에서 제외되어 있으며 매년 200만 명 이상이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한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민간의료보험의 주 모델국이 미국이라는데 있다.
엊그제 모 일간지에 실린 미국 하버드 보건대학원 사회역학자 가와치 이치로 교수와 을지의대 김명희 교수 인터뷰 내용을 보면 현재 한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와 민간의료보험 도입에 대해 “이윤을 창출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건강증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미국상황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환자 치료가 아닌, 행정 처리를 하는 데 낭비되고 있다. 미국을 따라하려는 그 어떤 시스템도 미국과 같은 대재앙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는 일반적 경제논리 잣대로 국민보건의료를 재서는 안된다. 민간보험 도입은 의료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개인에게 짐이 됨은 물론, 노동조합의 개입으로 단체 민간보험 가입이 강제되어 기업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고용불안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결국 부담은 사회 전체이고 이익은 보험회사 몫이다.
서민은 저급의료보험, 가진 자는 고급의료보험으로 양분 시킬 것이 뻔한 민간의료보험 도입이 과연 이 시점에 꼭 필요한 것인지 우리 모두 고민해 봐야한다.
입만 열면 사회 양극화 해소를 부르짖으면서 정부가 앞장서 국민의 건강까지 사회 양극화를 부추겨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