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문 인천문화비평 편집위원
 황해문화 50호가 발간됐다. 영상문화와 인터넷(디지털)문화의 급속한 활황 속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발행되는 계간지의 부침 속에서, 황해문화가 창간 이후 한 권의 결호없이 통권 50권을 냈다는 일은 축하할 일이다. 계간지 중에서 서점판매율이 높았던 당대비평이 휴간상태임을 감안하면, 또한 ‘주간인천’(통권 305호, 1954~1960) 이후 축적된 출판저널의 연혁이 빈약했던 인천의 사정을 헤아린다면, 전국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전범이 될 수 있는 건실한 잡지가 바로 황해문화다. 필자 역시 일년에 두 차례 발행되는 문화잡지를 만드는 사람으로, 황해문화의 든든한 물적토대와 편집권 독립을 갖춘 시스템이 마냥 부럽다.
 역설이지만, 책의 중요한 기능중의 하나로 ‘전시효과’가 있다. 필자도 한때 문학도를 꿈꾸면서 창작과비평 영인본을 구입, 전질을 완비해놓고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게 여긴 적이 있다. 황해문화도 창간호부터 46호(2005, 봄호)까지 내 책꽂이의 1열에 모두 자리잡고 있다. 어느 때에는 선배에게 얻기도 하고, 때론 헌책방에서 구입하기도 하면서, 열혈독자는 아니더라도 글을 써야할 경우가 있으면 늘 황해문화의 선행작업을 점검하는 버릇이 있었다. 최근필자는 인천출신 미술평론가 이경성 선생에 대한 짧을 글을 썼는데, 2000년 이전에 발행된 황해문화에서 유익한 정보를 많이 취합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황해문화에 대한 애착이 예전만 못해졌다. 책을 구입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편인 필자가 인천의 대표적인 계간지인 황해문화를 외면하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창간 10주년 기념호(2003, 겨울호) 부록은 내가 자주 들여다보는 황해문화의 총목차집이다. 공교롭게도 이 소책자의 첫 장에는 ‘유-턴(u-turn)인천’을 선언하는 창간사가 다시 게재되었지만, 잡지의 편집색깔은 ‘탈(脫)인천’의 가속화에 매진하고 있는 듯싶다. 잡지의 표지가 대폭 바뀌는 2000년 무렵부터 황해문화는 출간될 때마다 꼬박꼬박 중앙언론의 지면에 보도되는데, 인천에서 발행만 될 뿐 인천시민들에게는 더욱 더 멀어져가고 있는 것 같다.
 일간지의 독자투고란과는 층위가 다르게 운영되면서 인천시민사회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던 ‘한마당 열소리’의 폐지는 마치 인천(독자)과 소통의 창을 닫아버린 느낌이다. “인터넷문화의 발달과 지역언론의 활성화로 지역문제가 수렴되고 확산될 수 있다”는 김명인 편집주간의 언설이 과연 적실한지 의문이다. 황해문화가 창간될 당시보다 지금의 인천시민사회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지역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언정 지역신문의 초라한 가구구독자수를 고려해본다거나, 유일한 지역민방인 iTV의 실패를 생각해본다면 황해문화가 지역매체의 진영에서 이탈하려고 하는 경향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너나없이 ‘지역’이 대안이라고 회자되는 시대일 뿐더러 참여정부의 호불호를 떠나서 정권이 내세운 분권과 균형발전의 대의에 거부할 명분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진행하고 있을 때, 인천지역의 대다수 매체는 수도이전으로 인한 인천의 위상에 대해서 치밀한 논의를 펼치지 못했다. 이때 황해문화는 ‘풍수로 본 청와대 비극과 천도불가론’(44호), ‘수도이전 결정, 그 진행과정’(45호), ‘행정수도 이전 위헌판결 이후의 충청도’(46호) 등의 글을 통해 전국적인 이슈에는 가담했지, 인천을 중심에 두고 지역의 전망을 모색하는 데는 역시 비켜있었다. 영종도 신공항 건설에 관한 쟁점, 굴업도 핵폐기장에 관한 담론, 인천의 교육과 문화에 대한 천착, IMF시대의 인천의 과제 등 지역적 문제를 치밀하게 수용하여 인천의 자치역량을 견인했던 90년대 중·후반의 편집방향이 더욱 값진 기획으로 비쳐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황해문화의 모토에서 지역(인천)은 액세서리로 전락했고, 인천시민의 품보다는 중앙의 언론이나 이름난 지식인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갔다. 진보적 시사종합지 황해문화 역시 동아시아론 등과 같은 거대담론을 발판으로 또 하나의 중앙중심주의가 내면화된 것은 아닌지 곰곰이 성찰해볼 일이다. 어쩌면 황해문화의 치밀한 전략과 기획이 인천에 유통되기 버거울 정도로 지역의 지적풍토가 빈약하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일정부분 황해문화에게도 직무유기가 있을 터이다. 최근 발간된 50호는 혁신적 성격이 매우 강한데, 쉰 편의 원고 중에서 마지막 글인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보다는 ‘지금 인천에 필요한 것은’이란 콘텐츠가 있었다면, 필자의 황해문화에 대한 볼멘소리가 수준낮은 향토주의라고 비판을 받더라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