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의지하며 즐거운 수업 웃음꽃 활짝
 “배우는 즐거움이 얼마나 좋은줄 알아요? 70평생이 넘도록 몰랐던 것을 알고 또 알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정말 재미있어요.”
 올해 73세의 임인순 할머니는 여고생이다. 인천여고(인천시 연수구 연수동)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다닌다. 임 할머니는 학교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평소에는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 2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날 학교에 가서 반가운 급우도 만나고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공부도 배운다. 임 할머니는 학교 수업 전 날이면 어김없이 혼자 학교에 간다. 토요일 오후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임 할머니는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해 놓는다. 다음날인 일요일에 학교에 모여 수업을 하는 급우들을 위해서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어려운 가정형편때문에 고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는 정미진(가명·17)양도 방통고 학생이다. 벌써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미진이는 고교를 다니지 못한 아빠를 졸라 함께 방통고에 다니고 있다. 아버지 정씨도 제물포고등학교 부설 방통고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일요일인 8일 오전. 이들 방통고 여고생들이 모인 인천여고 12개 교실은 배움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학년별로 교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교복 입은 앳된 여고생이 아닌 대부분 ‘아줌마’ 들이다. 물론 임 할머니처럼 노인들도 있다. 얼른 보면 학부모 모임같지만 그녀들은 엄연한 학생이다.
 이 곳에서 공부를 하는 여고생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는 여성들이다.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제때 공부를 하지 못하고 이제서야 방통고를 다닌면서 만학의 꿈을 이루어 가고 있다.
 인천여고 부설 방통고 1학년 1반은 10대에서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모여있다. 미진양은 이 곳에서 가장 어린 학생이다.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아이 셋을 키우며 배움을 계속하고 있는 조모(44·여)씨, 농아인이면서도 동기들의 도움으로 수업에 빠지지 않고 열심인 정모(44·여)씨 등 저마다 사연도 애절하다. 그래도 그들은 배움의 즐거움에 푹 빠져있다. 행복한 표정들이다.
 어떤 여학생(50대 주부)은 그동안 가족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에게 학력을 숨겨왔던 터에 가족들에게조차 학교 다니는 사실을 쉬쉬해가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의외로 이런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인천여고 부설 방통고 1학년 1반 담임 장양기(43) 선생님은 “배움에 대한 이들의 열정은 나이조차 잊게 할 정도”라고 말한다. 장 선생님은 “한 달에 두 번 휴일을 반납하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늦깍이 여고생들을 만나는 날이 기다려질 정도로 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며 활짝 웃었다.
 인천여고 김인철(62) 교장은 “27년 전 방통고 1회 졸업생들과 함께 했는데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정진하는 이들을 보면 그저 대견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올해로 27회 졸업생을 배출하는 인천여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노력하면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사람들의 향기가 가득한 교실안에서는 잠시 긴장을 풀려는 누군가의 농담 한마디에 한 바탕 웃음꽃이 피어 올랐다. /유길용기자 (블로그)y2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