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득표 인하대 교수, 정치학
‘한국의 정치리더십’이라는 주제로 대학원 수업에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정치리더십에 대한 일반 이론 소개와 역대 한국 대통령의 업적, 리더십 유형, 그리고 정치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평가 등에 관한 발표에 이어 토론이 진행되었다. 토론은 자연스럽게 현직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하여 초점이 맞춰졌다.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이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 후보에 대하여 많은 기대를 걸고 지지했지만 이제는 지지를 철회한 상태이며, 그 때의 선택을 몹시 후회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노 대통령에 대하여 실망하고 지지를 철회한 이유는 다양했지만 다음 몇 가지가 주요한 요인이라고 했다. 통합의 리더십이나 수용(受容)의 정치대신 코드 중심의 편 가르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민생문제 보다는 과거사, 연정, 지역주의, 선거법, 개헌 등 주로 정치문제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 현실주의보다는 분배, 민족주의, 탈미(脫美), 자주국방, 동북아균형자론 등 이상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 권위주의는 해체되었지만 대통령 직에 대한 권위가 떨어졌다는 점, 품위 없는 언행으로 국민의 자존심을 극도로 손상시켰다는 점 등등이 지적되었다.
다음은 ‘노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소환제가 제도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리더십 스타일을 바꾸어야만 하는 외부압력과 여건은 충분하게 조성되었지만 왜 변하지 않는가에 관심이 쏠렸다.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했고, 여당의 지지도는 10%대로 추락하였으며, 재.보선에서 연거푸 참패했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도 역대 최악인 20% 안팎으로 떨어졌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대통령은 분명하게 변해야 하는데 조금도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또한 대통령의 리더십을 변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노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 사람의 리더십 스타일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치사회화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리 쉽게 재사회화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로버트 윌슨(R. A. Wilson)이 지은 ‘대통령과 권력’에 의하면 타고난 본성, 성장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일생에 걸쳐 형성되어온 성격, 교육과 체험을 통해 쌓은 도덕심 등등이 제도보다 위대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좋은 헌법보다는 오히려 개인적 성품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노 대통령의 타고난 성격 때문에 남은 임기 동안 리더십 스타일이 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그렇다면 현 상태에서 대통령의 임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하는 답답한 심정을 피력하였다. 국민이 선출한 정치지도자가 국민여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내 갈 길만 가겠다고 고집한다면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전연 맘에 들지 않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기는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민이 다수 있는 한 속수무책이다.
역설적으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나 리더십 스타일을 경험하면서 ‘대통령이 이래서는 안 되는구나’ 하는 정치학습 기회가 주어진 것은 분명하다. 선거 때 국민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노 대통령을 통해서 국민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정치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다. 정치발전은 잦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한국정치는 지난 일을 너무 쉽게 망각하고 관용적 태도를 보여 왔던 우리 국민이 앞으로 어떤 투표행태를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