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주 농협중앙회 인천지역본부 여성복지팀장
시골이 그립고 고향이 그립다. 고추장, 된장을 담가 먹으며 푹 삭힌 김장김치를 뒤뜰 김칫독에 묻어 놓고 항아리 뚜껑에 배를 깔고 엎드려 열어서 꺼내 먹고, 비오는 날은 김치부침개를 부쳐 동네 아낙네들과 계산하지 않는 수다를 떨며 사람 사는 맛을 즐기고 싶다.
봄에는 산과 들에 있는 쑥과 산나물을 뜯고 매실주와 머루주도 담그고, 여름에는 강가에 나가 멱도 감고 앞마당 평상에 앉아 입이 터져라 상추쌈에 풋고추도 된장에 찍어 먹고,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툇마루에서 늘어지게 낮잠도 자고 싶다.
가을에는 겨우내 먹을 호박과 무말랭이도 말려 놓고 고추도 말리고, 텃밭에 내 손으로 키운 배추를 뽑아서 김치도 담그고 싶다. 장아찌도 종류별로 된장에 푹 박아 놓고 삭힌 다음 뜨거운 밥에 척 얹어서 먹고 싶다. 그리고 눈이 허리까지 차서 교통이 마비되면 몇 날 며칠을 기다리는 불편함도 여유로움으로 느끼고, 해 뜨면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들어 시계를 외면하며 자연의 시간 속에 동화되어 살고 싶다.
나의 고향은 인천이다. 인천에서 태어나 지금껏 인천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런 내가 시골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이다. 방학 때마다 나의 외가가 있는 시골에서 거의 방학기간을 보냈다. 나에게 있어서 시골은 불편함보다는 정겨움으로 다가왔다.
논에서 나는 벼 익는 냄새, 들에서 향긋한 풀내음을 맡고 알알이 맺힌 포도 송이가 있는 원두막에 앉아 옥수수를 먹으며 그렇게 여름방학을 보냈다. 겨울에는 정강이까지 쌓이는 눈을 맞으며 외가로 오리 길을 걸어서 다녔다. 내가 평생직장으로 농협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시골에 대한 추억 때문이었다.
요즘의 나는 도시에 있는 기업과 시골마을을 연결해주는 자매결연의 중매자로서의 일을 하고 있다. 2003년말부터 시작된 농촌사랑운동으로 1사1촌 자매결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여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돕고 형제처럼 자매처럼 지내자는 사업이다.  올해 인천에는 230여개 기업과 마을이 자매가 되어 활발히 왕래하고 있는 중이다.
이 일을 하며 수많은 기업의 임직원들과 단체장들을 만나면서 시골에 대한 향수가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님을 느낀다. 도시에 살수록 삶이 각박할수록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고향인 시골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았다. 자연이 주는 풍요와 여유로움을 누구나 그리워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은 시골에 사는 거의 모든 분들이 도시에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도시분들은 마음은 가고 싶지만 시골생활에 적응할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귀소본능이 있듯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문명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되어 인간미가 없어지고 삭막해지면 더욱 자연을 동경하게 된다.
요즘은 시골 학교의 학생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의식있는 젊은 부부들이 동심을 키워주기 위한 귀향이 늘고 있다. 아이들은 들꽃과도 같다.자연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아이들은 꽃이 된다.
요즘 모 신문에 연재되는 해외에서 노후 보내기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동남아 등지의 물가와 인건비가 싸고 공기가 좋은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시골에서 노후 보내기를 권하고 싶다.
시골집에 구들을 놓고 나무도 때고 연탄도 때며 연료도 아끼고 또 공간이 허락된다면 마당 한구석에는 황토로 작은 찜질방을 만들어 놓고, 텃밭을 가꾸며 무공해 야채를 먹으면서 건강도 챙기고 생활비도 아낄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참살이요 일석이조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누구나 시골에서 노후를 보내다 보면 저절로 우리의 시골은 계속 남아있게 되어 후손에게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물려줄 수가 있다.
시골은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하지만 약간은 부족한 듯 사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지. 그래서 시골에서 살면 무엇보다도 욕심이 줄어들고 마음이 비워질 것 같다. 비어있어야 채울 수 있다. 인생의 제2막을 농촌에서 다시 채우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