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식 인천상의 기업지원팀장
11월초 인천시 경제대표단의 실무책임자로 평양을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번 방문은 지난 5월 안상수 시장의 북한방문 당시 경제교류확대 제안을 북측이 전격적으로 수용하게 되어 성사된 것이다.
이번 경제대표단의 방북을 계기로 경제교류 확대의 물꼬를 트게 될 경우 인천은 대북 경제교류 중심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출발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주민들의 경제적?물질적 생활수준은 낮지만, 농업 기계화가 일찍부터 되어 있었고 교육과 의료시설이 무료로 운영되는 사회로 알고 있었다
첫발을 내디딘 평양공항은 10여대의 항공기가 보일 뿐이었다. 공항에서 처음 만난 북한 사람은 제복을 입은 세관직원이었다. 여느 국제공항에서의 보안검색 및 통관 절차를 밟았다.
통관절차를 마친 후 우리가 오른 버스는 현대그룹이 지원한 중형버스였다. 민족화해협력위원회관계자들이 마중 나와 양각도 호텔로 향했다. 순안비행장과 평양시내로 이동하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키색 또는 검정색 계통의 옷차림으로 걸어다니는 것과 많은 살림집(아파트), 각종 시설물들이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어 획일주의사회의 단면을 잘 볼 수 있었다. 양각도 호텔은 한강에 여의도가 있는 것처럼 대동강 가운데 다리로 연결된 섬에 있는 국제규모의 호텔이다.
3박 4일 동안 북한에 머물면서 북한사회도 자본주의사회와 다름없이 빈부 또는 계급의 차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우리와 다른 것은 그 평등하지 않음을 북한 주민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평양시내 곳곳에서는 김정일을 찬양하는 문구와 ‘김일성 수령님이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문구에서 유훈(遺訓)통치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평양시내 이곳 저곳을 다니며 만난 북한 사람을 보며 느낀 것은 북한사람들이 당과 수령, 지도자에 대해서 가지는 충성심은 정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처럼 대단해 보였다. 그들은 경제가 어렵고 넉넉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남한의 경제성장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먹고 입는데 잘살지 못해도 민족 주체성은 지키며 삽니다”라고 말하는 안내원의 표정은 녹음기 소리처럼 사무적으로 들렸다. 나는 배를 고파하면서 지켜야하는 주체성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방문기간 동안 대표단을 대하는 북한당국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었다. 주체사상탑과 통일거리, 인민대학습당 등 주요 시설을 개방, 공개하고, 대표단원들의 다양한 질문에 거리낌없이 대화하는 등 행동의 유연성을 보이기도 했다.
많은 기대와 설렘속의 첫 만남이었지만 지난 60년간의 헤어짐의 간극은 너무나 컸다. 예전의 중국이 그랬듯이 북한은 폐쇄적이고 개방적이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번 북한방문을 통해 남북 상호간의 이해증진은 물론 경제교류를 확대해 갈 수 있는 실마리는 마련되었다고 본다.
이번 남북 경제인의 만남은 북측이 소위 통일을 위한 통 큰 교류사업을 주장하고, 남측 기업들은 투자타당성과 투자환경, 사업성을 추구하는 현실적인 장벽이 있긴 하였지만 지속적으로 상호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면서 남북간의 불신을 걷어낸다면 실질적인 교류협력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실성을 기반으로 세계에서 유례없는 급성장을 한 우리민족의 기개를 살려 남북한이 힘을 합한다면 우리 한민족은 세계사에 새로운 공동체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평양시내를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산은 민둥산이나 거기도 우리와 똑같이 경지정리가 잘 된 논과 밭이 있고 우리 동포들이 사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