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제물포(濟物浦)라는 이름으로 외세(外勢)에 의해서 개항되었던 제물포는 자그마한 그러나 정겨운 포구였다. 비록 일제에 의해서였지만 항구로서의 기능을 확대하기 위해 축항이 건조되고 서울의 관문역할을 할 때에도 인천항과 월미도는 경인(京仁)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바다내음을 맡고 개펄을 바라보면서 바다와 함께 할 수 있는 항구도시였다.
그러나 6.25 사변 이후 미군(美軍)에 의해서 인천항의 대부분이 군사 작전용으로 이용되고 60년대 이후부터는 경제개발과 함께 레그도크가 완성되면서 인천항은 시민들로부터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항구 주변에 철조망이 쳐지고 원목(原木), 고철(古鐵), 곡물류 같은 원자재를 하역하는 항구로 변모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해야 할 인천항은 시민들과 격리된 채 공해를 유발하는 애물단지로 변모하고 말았다. 더구나 월미도 일대의 개펄도 모르는 사이에 매립되면서 준공업단지로 변해 시민들과 함께 해야 할 마지막 친수(親水) 공간 마저 사라져 버렸다.
필자는 지난달 여행동호단체인 상미회(尙美會) 일행과 함께 북구주(北九州)일대를 여행하면서 나가사키(長崎)현의 대표적인 항구 사세보(佐世保) 항구를 방문한 적이 있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 해군의 정기화물선이 인천항과 사세보항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면서 보급 물자를 실어 날랐기 때문에 인천항의 원로들에게는 귀에 익은 항구이기도 하다. 아직도 미 해군 기지가 있고 일본 해상 자위대의 모항이기도 한 사세보 항구는 놀랍게도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주말 오후를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시민들이 깨끗하고 가지런히 정리된 항구 주변을 산책하는 모습이 그토록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마침 해외 실습을 위해 사세보 항구를 방문한 목포해양대학의 실습선은 사세보 역(驛)에서 불과 100미터도 안 되는 부두에 정박해서 중학생들과 시청관계자들은 물론 경찰 밴드까지 출동하여 성대한 입항 환영식을 받고 있었고 많은 시민들이 이 광경을 관심있게 구경하고 있었다.
사세보항 뿐 아니라 일본의 크고 작은 항구도시의 부두는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고 친수 공간을 위해 존재한다. 고베(神戶), 후쿠오카(福岡), 요코하마(橫浜), 하코다테(函館) 등 일본의 대표적인 항구들은 여객선이나 청정화물을 운반하는 선박들이 찾아오지 인천항처럼 분진과 공해를 유발하는 원자재를 하역하는 경우는 드물다.
21세기에 들어와 송도 신도시를 개발하고 경제자유구역을 통해서 첨단산업을 유치하며 2014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고장 인천항을 이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다. 북항(北港) 개발을 서두르고 월미도 일대의 공장들을 타 지역으로 이전하여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사업이야말로 앞으로 인천시정을 담당할 시장의 제 일차적인 과업이라고 필자는 확신하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을 서울 시민들에게 돌려주었듯이 앞으로 인천시정을 맡게 될 사람은 인천항과 월미도를 시민들에게 돌려주었으면 좋겠다. 인천 시민들 뿐 아니라 수도권에 살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인천항을 찾아 여객선들과 청정화물을 운반하는 선박들을 가까이서 보고 인천역에서 월미도까지를 바다와 개펄을 보면서 산책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동안 인천시민들은 경제개발을 위해 항구도시의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특권을 포기한 채 지내왔다. 인천 앞바다와 항구를 반세기만에 시민들에게 돌려 줄 사람이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