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성군 농협중앙교육원 교수·경제학박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잉꼬부부나 항상 붙어 다니는 애인사이를 보고 닭살커플이라고 한다. 이런 유행어처럼 사람과 닭도 역사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늘 함께 해 왔다. 또 흔히 머리가 좋지 않은 사람을 ‘닭 대가리’라고 부르는 편견도 있다. 하지만 닭의 역사를 살펴보면 닭은 결코 머리가 나쁘지 않은 존재다.
예컨대 신라의 옛 이름이 계림이다. 계림의 계는 닭 계(鷄)자로 닭이 우는 숲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가 큰 알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은 닭을 하늘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는 귀한 존재로 여겼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또한 우리나라 닭은 아주 오래 전부터 길들여 길러온 터라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소리를 내어 토종시계 역할을 해 왔다.
특히 밥 힘으로 살아온 우리 조상들에게 기력을 회복시켜 주는 자양음식으로서 영양을 책임져 주었다. 그래서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사위를 잘 대접하려는 장모님이 큰맘 먹고 마련하는 음식이 바로 맛있는 닭요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보통 고기를 먹는다고 하면 주로 닭이 이용되었고 집집마다 닭 몇 마리씩은 기르게 되었다. 이는 특별한 날 간단히 요리할 수 있고, 또 덤으로 계란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한여름 복날에 푹 고아 먹는 삼계탕과 궁중닭찜, 불 곱창 등 다양한 닭고기 요리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양계산업에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보다 더 슬프게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양계농가들은 계란 한 줄이라도 더 많이 생산하려고 땀 흘리는 판국에 농가의 정성은 뒤로한 채 조류독감에 대한 소식이 언론매체를 통해 전달되면서 가뜩이나 먹거리에 민감한 우리 국민들이 걱정을 넘어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함은 기본이다. 하지만 맹목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 양계농가를 파탄지경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닭을 못 먹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닭을 먹고 죽었다는 사람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재작년 조류독감 파문 때문에 30대 통닭집 주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었다. 결국 다수의 편견이 사람을 죽인 셈이니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번 조류독감 파문 또한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연일 조류독감에 대한 보도가 확산되면서 국민들을 공포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앞으로 불안감은 더욱 증폭될 것이고, 동시에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양계산업 자체가 붕괴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국민들을 먼저 안심시키고 침착하게 대처하여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국가적으로는 중국 등과 핫라인을 설치하여 실시간 통보시스템을 가동시키는 한편 특별방역도 철저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편견(偏見)이냐, 배려(配慮)냐? 이 말은 소비자의 편견과 양계농가의 회생 사이의 딜레마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표현이다. 조류독감 파문이 일 때마다 타산업 종사자는 정서적으로나 현실적인 면에서 유리하고 양계산업 종사자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본래 동물로부터 건너오는 새로운 인간의 적들에 대한 100% 완벽한 대책은 애시 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편견이라는 게임법칙 너머로 양계농가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더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