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갠서라는 미국의 작가는 더글러스 맥아더를 ‘태평양의 시저’라고 부른 바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표현은 맥아더의 성품이나 업적등으로 보아 매우 적절하다는데에 동감하고 있다.
사실 단순히 언어표현의 방식만 비교해도 이 로마의 영웅과 맥아더는 비슷하게 느껴지는게 많다.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는 시저의 말 가운데에는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다, 보았다, 이겼다.’라는 게 있고 맥아더의 말 가운데에는 ‘나는 돌아오게 될 것이다.’(I shall return),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 never die, only just fade away.)라는게 있다. 독자들은 우리말 번역으로는 실감나지 않는 I shall return이라는 표현을 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이 말은 필리핀에서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바탄을 떠나면서 한 말인데 보통의 어법으로는 ‘I will return’이라고 하며 shall은 쓰는 일이 거의 없다. 이 말은 어떤 운명적인, 예언적인 미래를 나타내고자 할 때 쓰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중.고교 영어시간에 배운 바 있다. 피라밋 앞의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알아맞추지 못한 나그네에게 ‘You shall die’라고 했다는데 이 말의 뜻을 살펴 번역한다면 ‘너는 죽을 운명이다.’ 즉 ‘나는 너를 죽이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맥아더의 shall은 내가 단순히 필리핀을 탈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 즉 일본을 패배시키는 것은 운명적이며 필연적인 것으로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미래라는 뜻인 것이다.
다 알다시피 맥아더는 카리스마가 강한 성격이고 자존심이 높았다. 이런 성품으로 일부의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다른 일부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군인으로서 특히 전시의 지휘관으로서는 적합한 개성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맥아더의 자서전을 보면 그가 영국 켈트족의 반전설적인 영웅 ‘아더’왕의 후예라는 명예로운 가문이라는 것을 농담삼아 자랑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도 군 장성으로 필리핀에서 군의 최고 책임자로 복무했으며 이것이 맥아더가 동아시아와 인연을 갖게된 중요한 이유가 된 것이다. 그는 6.25때 인천상륙작전으로 우리와는 숙명적인 연관을 맺었지만 그는 이미 청년시절 노·일전쟁때 당시의 조선을 방문한 바 있었다. 이것은 미군이 일본군의 전쟁능력등 여러가지를 살펴보기 위해 일본군에 참관요청을 해서 이뤄진 것인데 아마도 노인이 돼서 다시 한반도에 발을 디디리라고는 그도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고 김홍일 장군의 말인 것 같은데 6.25 며칠후 한강교가 폭파되고 국군이 노량진 일대에서 수비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맥아더가 나타나 망원경으로 북쪽을 살펴보다가 주위의 한국군 지휘관들에게 짤막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 장군은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마치 지옥에서 하느님을 만난 것 같다는 식의 회고담을 남겼다.
정말 우리는 반세기전 구사일생으로 자유 대한을 살려냈다. 중국 공산당에서 항일투쟁을 하면서 잘 훈련됐고 또 대량의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 싸운 미군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신세에 빠져 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남쪽 전체가 현재의 북한과 같아졌을 것이다.
일부에서 맥아더를 전쟁광이라고 했다. 또 일부에서는 인천의 맥아더 동상을 훼손하려 했다. 물론 그 반대의 말과 움직임도 있었다.
우리는 6.25때의 미군이 단순히 남쪽의 한국인들을 불쌍히 여겨 피흘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시 중국대륙이 공산화되고 냉전은 날로 격화됐다. 한반도마저 전체가 공산화가 되면 그 다음에는 일본이 위험해지는 등 공산화 도미노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이유야 어떻든 너무나 큰 신세를 진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맥아더 동상이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에 대해 다소 씁쓸한 느낌을 받은 바 있었다. 그런 감정은 우리 자신의 과거의 초라하고 허약했던 국력과 연관된 복합적인 이유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동상을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다만 언젠가 통일이 되고 6.25와 맥아더의 상륙작전이 역사의 페이지로 넘어갈 때 그의 동상을 보다 적절한 장소로 옮기는 것은 괜찮은 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