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내 상수도사업본부 부평정수사업소
집에서 다정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밖으로 나왔다. 계양산과 가까운 임학동은 조금만 걸으면 공원이 나타난다. 집에서와는 다른 맑은 공기가 내 코끝에 와 닫는다. 나는 들길을 걷듯 천천히 발을 옮긴다.
오늘은 나의 마음속에 커다란 여유가 생겼다. 집에서 다정한 사람과 뜻있는 이야기를 나눈 여운 때문일까? 사람은 주위의 구속에서 벗어져 나올 때 희열을 느낀다. 자의든 타의든, 괴로움이든, 기쁨이든, 대상에게 너무 묶여 있다는 것은 고통이 된다. 그래선지 오늘은 완전히 자유 속에 나를 던져 놓은 기쁨이 있다. 높은 하늘에는 가을이 말없이 흘러가고, 나의 마음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空으로 꽉 차 있다. 세계는 무제한으로 터진 대공간이다. 그 공간 속에 놓여있는 나는 또 하나의 공간을 소유한 생물이다. 허허한 광막과 우주에 싸여있는 나는 절대의 無 앞에서 무의 법열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무와 空을 구별한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까다로운 구별을 하고 싶지 않다. 텅 비어 있으니까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텅 빈 이대로이다. 인간은 때로 욕망의 포로가 된다. 물욕, 명예욕, 애욕, 탐욕 등 갖가지 욕망이 뱀처럼 꿈틀거린다. 그 욕망에 붙잡혀 있으면 생각이 작아진다. 위축되고 왜소해지고, 소심해지고 추악하다. 그러나 욕망에서 발을 떼고 한번 벗어져 나오면 바다가 거기 넘실거린다. 지금 나는 무엇에도 붙잡히지 않는 자유 속에 발을 옮긴다.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무는 인간의 영원한 고향이다. 무의 바탕 위에서 우리는 생명을 살아간다. 무는 생명의 근원이요 귀향지이다. 그 무를 깨닫고 보면 종교와도 같은 법열을 얻는다. 생도 사도 지금은 나에게 없다. 오직 있는 것은 공간과 함께 그 속에 부유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 존재가 세계와 더불어 함께 있으니까 이처럼 기쁨을 느끼는 모양이다.
계양산 임학공원에서 횡단로를 따라 둑실동까지 걸었다. 십리나 됨직한 거리지만 피로를 모르겠다. 가을바람이 와서 가슴을 어루만진다. 다정한 친구의 정다운 손길과 같다고 할까? 인간은 때로는 죽고 싶도록 기쁠 때가 있다. 사랑의 극치를 경험하는 순간이라든가, 예술적인 큰 충격을 경험하는 순간이라든가, 종교적인 법열을 감득하는 때라든가, 나를 無化시켜서 주위에 흡수시킬 때 죽음에의 유혹이 온다. 그것은 순수 무상의 고귀한 욕망이 스스로를 승화시키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뚜라미의 외로운 울음소리가 한 밤을 더욱 그윽하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 소리조차 사라졌다. 대신 낙엽조각이 땅에 굴러다닌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 한가운데에 서면 담을 의지한 커다란 무화과나무 아래는 낙엽의 전시장이 된다. 손바닥만한 무화과 잎이 허리를 구부리고, 팔을 오그리고 떨어져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여름의 푸른색을 잃고, 무기력한 박제를 당하고 있다. 거리를 나가면 보도위에도 너플너플한 낙엽이 있다.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들이다. 바람에 날려서 둘둘둘 바퀴를 돌리기도 하고, 공중으로 치달아 크게 선회를 감행해 보기도 한다. 자기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나무에의 기억은 전혀 잊어버리고, 몸이 닿는 대로 아무데나 뒹굴어 다닌다. 낙엽의 표정에는 일년 동안의 역사가 있다. 봄에 싹이 터서 낙엽이 지는 가을까지 그들은 한 생애를 보낸다. 비바람과 싸우는 고통과 여름의 화려한 낭만과 매미소리 새소리와의 정다운 대화들이 낙엽에는 무언으로 조각돼 있다. 그러나 겨우 일년으로서 생명을 버려야 하는 낙엽들이다. 사람은 낙엽을 보고 생명의 有限을 느낀다. 낙엽처럼 가야하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고 한다. 낙엽이 있기 때문에 사색의 부피를 더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낙엽에서 허무와 애상을 찾아낸다. 인생은 때로는 허무와 애상이 있어서 오히려 일체감을 가진다. “밤을 새우면서 인생을 울어보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 어느 시인도 있다. 건전하기만 한 인생은 혹 행복하기는 해도 그늘이 없는 나무와도 같다. 고독을 아는 사람은 매력이 있다. 허무를 울어본 사람은 인간적이다. 고독과 허무에 패배하지 않고 그것을 굳게 딛고 일어설 때, 사람은 오히려 강해진다. 강하기만 한 사람은 위선자가 되기 쉽고, 약하기만 한 사람은 感傷者가 되기 쉽다. 두 가지가 함께 밖과 안을 이을 때 인생은 더욱 완전한 것이 아닐까? 낙엽은 일을 끝내면 미련 없이 생명을 버리라는 암시를 준다. 가볍게 훌훌 날리듯이 멋이 있는 종말을 가져야 한다고 손짓을 한다. 낙엽은 허허한 낭만의 표상이다. 죽음도 일종의 낭만이 될 수 있다는 철학을 던진다. 어느 하루, 예고도 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깨끗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