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문제로 이른바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간에 첨예한 갈등이 또 한번 심각하게 노정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동상을 철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전부 몰아서 친북적이고 반미적인 진보세력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듯이 동상을 사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두 싸잡아 친미적이고 반북적인 보수세력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도 간단하고 쉽고 자신있게 이러한 유형의 행태를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의 성격을 구분지어 왔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차원에서만 규정할 수 없는 측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 가정을 유지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어머니나 아내의 입장을 예로 들어 보자. 아버지나 남편의 한 달 월급을 이러저리 쪼개서 적금도 들고 자녀들 학비도 내야 하고 생활비도 해야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어머니와 아내들의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나 남편이나 아이들의 용돈 요구에 제동을 걸기도 하고 아껴쓰라고 잔소리로 여겨질 법한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러한 잔소리는 비단 이 경우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나 남편, 아이들의 행위 전반에 걸쳐서 행해지기도 한다. 가정 내에서의 여러 가지 문제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것이 아내의 역할이고, 가족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보수의 모습이며 어쩌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보수의 조건이야말로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보통의 아내가 가정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으며 평범하고 소박한 어머니가 자식과 아버지를 팽개치고 온갖 편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존재라고 할 수는 없다.
회사 사장이 도가 지나치게 못되게 굴어도 벌어놓은 돈이 많거나 먹고 살만한 재산이 있으면야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모멸감을 느끼더라도 가장은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 이 악물고 돈 벌어 잘 살 때까지 참아야 한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에 대한 우리의 현재 실력이고 능력이다. 그래서 역겨워도 참는 것이다. 이러한 가장은 설령 자신의 조상이 과거에 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가문에 대한 실망과 혐오감을 자식에게 주지 않기 위해 조상의 잘못을 알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해방 이후 남쪽의 사회주의는 일본에서 유입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1930년대 카프문학은 일본의 나프문학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친일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과거청산의 이슈로 내세우고자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천의 자랑인 우현 고유섭이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경성제대 미술과에 최초로 입학하여 우에노(上野), 다나까(田中) 등 일본인 교수들 밑에서 공부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친일 혐의를 의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된 우리 미술사를 올바로 규명하고자 했던 위대한 미술사가로 기억하고자 한다. 민족과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은 이렇게 형성되고 유지되고 이어지는 것이다.
보수 가운데에는 자신의 노력 없이 게다가 교묘하게 각종 불법을 저지르면서 물질적 부를 소유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마 이들이 소위 수구적 보수일 것이다. 그러나 보수 가운데에는자신의 힘으로 부를 획득하고자 하고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부동산 투기로 돈 놓고 돈 먹기를 다반사로 저지르는 사람들보다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투자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평등과 분배와 균형보다 공정과 성장과 효율을 중시하는 것이다. 적어도 평등과 분배로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소박한 희망을 이루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성장을 통해서 사회의 활력과 동력을 살리지 못하고는 아무리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해도 소용없다는 것이 이 시대 보수들의 일반적인 생각이고 입장이다. 따라서 이들은 국가가 과거로 뒷걸음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보수는 노대통령이 말한 ‘별놈의 보수’는 절대로 아닐 것이다. 보수에 대한 오해가 너무 크지 않나 싶다.
/ 김준기 전 인천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