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농수산물 도매시장 렁지스(Rungis)는 새벽 4시부터 붐비기 시작한다. 파리 수도권 1천만 명 이상의 주민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고 수많은 음식점이나 식료품점에 재료를 대고 있는 렁지스 중앙시장을 가보면 식도락(食道樂)의 나라로 꼽히고 있는 프랑스 사람들의 다양하면서도 엄청난 식욕에 놀라게 된다. 특히 렁지스 시장과 접해 있는 오를리(Orly)공항을 통해서 항공 화물 편으로 당일 세계 각지로부터 수입된 농산물이나 수산물들의 종류와 양을 보면 프랑스 사람들의 입맛을 위해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식품을 수입하고 있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유럽 최대의 농업국이자 세계적으로도 다양하고 질 좋은 각종 식품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정평(定評)이 나 있는 프랑스이지만 외국산 농산물 역시 관대하게 수입하고 있고 소비자들도 외국산 식품이 가정에서나 레스토랑의 식탁에 오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도 신토불이(身土不二)로 상징되는 자국 농산물 선호사상이 있겠지만 흙(土)의 범위를 프랑스 국경으로 제한하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곳에서 제대로 재배되고 잡아 올린 식품으로 생각하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세계 최대의 포도 생산국이면서도 겨울과 봄철에는 칠레 포도가 시장에 나오고 봄과 여름에는 아르헨티나 사과가 과일 가게 진열대를 장식한다. 국적 불명의 오렌지 주스 등 과일 주스를 마시는 우리와는 달리 프랑스 사람들의 대부분은 미국의 트로피카나와 같은 신용 있는 회사의 주스를 마시고 있다.
수산물 쪽으로 가면 원산지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아프리카를 위시하여 캐나다와 호주산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의 바다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들과 갑각류들이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중국 다음으로 오리고기를 많이 소비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중국산 오리들이 고가(高價)에 팔리고 식도락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거위간(푸아그라)도 헝가리에서 많이 수입하고 있다. 이같이 외국산 농수산물을 다양하게 그리고 많이 수입하여 소비하고 있는 프랑스의 소비자들은 국내산은 무조건 좋고 수입품은 나쁘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지는 않다. 식품의 질은 원산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질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정은 비단 프랑스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고 유럽의 모든 나라와 미국 또한 마찬가지다. 수입 통관 절차와 소비자의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도 중국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가지 농수산물을 수입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외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자스코(Jusco)같은 대형 매장에 가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수입 농수산물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고 소비자들도 안심하고 식탁에 올리지 않는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국내산 농산물을 우선 사용해야 한다는 학교 급식 조례(條例)를 무효라고 판결한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서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만을 보아도 우리나라의 수입식품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케 한다. 국토에 비해 인구가 많고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다양한 식품수요가 늘어나는 우리의 경우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식품수입업자들과 수입검사당국의 자세이며 외국산이라도 질만 좋으면 제대로 된 가격을 지불하겠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전환에 있다.
그 동안 불량식품의 원산지로 지목 받아 온 대표적인 국가인 중국에서도 고급품은 일본 등 선진국에 수출하고 저가품은 한국으로 팔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더구나 한국의 수입업자들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유해식품을 수입하는가 하면 현지 가공시설의 위생 관리가 엉망인 곳이 많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향하는 시점에서 복잡하면서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는 수입식품을 원산지로부터 검사 관리하고 철저한 통관절차 등을 강화해야 되겠다. 신토불이의 허황된 믿음도 문제지만 5천만에 가까운 인구가 소비하는 식품의 관리에 현재의 관리.검사 조직과 인원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모두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