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단지공단 경인지역본부가 지난 달 인천시에 눈에 확 띄는 계획을 제출했다. 남동산업단지에 ‘첨단클러스터파크’를 조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폐기물처리시설 터로 돼 있는 남동산단안 1만4천600여 평에 공장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도시계획시설을 바꿔달라는 요청이었다. 여기에다 오는 2008년까지 첨단 업종을 유치하고, 물류센터까지 갖춰 클러스터형 단지로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마디로 제조업 위주의 남동산단에 보란듯이 IT, BT 중심의 R&D단지를 조성해 산단 전체의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데 지렛대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인천시민의 입장으로서는 두 손을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남동산단을 거대한 ‘오염 덩어리’로 체감하고 있는 공단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 보다 반가운 소식이 없을 듯하다.
산단의 산업 고도화는 큰 흐름이고, 마땅히 이를 주도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명제다. 하지만 조성한 지 20년이 지난 남동산단의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남동산단 입주업체 4천여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세를 사는 임대공장이다. 부동산 전문임대업체만도 320여 곳에 이른다. 업체당 평균 종업원수는 5년새 18.5명에서 15.8명으로 줄었다.
남동산단에서 50평을 빌려 생산활동을 하자면 임차 공장주는 보증금 1천만~1천250만원에 월세 100만~125만원을 내야 한다. 남동산단이 쭉정이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남동산단 입주업체들은 사실 산업구조 고도화를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이 아니다. 시설 등 투자여력조차 없어 못하는 것이다.
남동산단이 여기까지 온 데는 사실 투기세력으로부터 진정한 제조업체를 보호 못한 원인이 가장 크다. 현행법상 임대사업자가 임대차 계약을 맺은 뒤 산단 관리기관에 신고하지 않아도, 산단 관리기관은 관할 지자체에 500만원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의뢰할 수 있을 뿐이다.
산단 전체의 산업구조의 고도화는 단지 한 개 단지를 본때 있게 조성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산단 입주기업 대부분이 산업구조를 따를 수 있는 여력 없이는 한낱 몽상일 뿐이다.
산단공이 남동산단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원한다면, 선결과제는 지금의 제조업이 산업구조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박정환기자 (블로그)h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