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병무 인천시 서구 가좌2동
요즈음 방송과 신문을 보면 왜 갑자기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철거가 타당하다는 여론이나 뉴스는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일방적인 의견만을 가지고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걱정이다. 그 중에는 나이가 많아 머리가 하얀 사람도 있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6.25전쟁은 김일성이 치밀한 계획 하에 중공과 소련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전쟁이란 사실은 너무도 명백하다. 남과 북의 청년들이 강제로 전장에 내 몰려 서로 싸워 귀중한 생명이 수도 없이 죽었다. 남쪽에서는 아무런 방비가 없었던 차 속수무책으로 3일만에 서울을 인민군에게 점령당했다. 인민군은 그 후 남쪽의 각지에서 호응하는 동요가 일어나길 기다렸으나 아무곳에서도 소요사태가 없자 남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맥아더는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극동군 사령관으로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스스로 남쪽을 방어해 주겠다고 나섰는가? 아니다. 6.25전쟁이 일어나던 날 밤 워싱턴의 주미한국대사 장면박사가 이른 새벽에 미국정부의 주요 인사를 찾아가 읍소를 하면서 도움을 강력하게 요청했던 것이다. 당시 투르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의지의 결단력에 의하여 맥아더사령관에게 참전을 명령했던 것이다. 인민군이 수원을 점령하자 그 때 겨우 대전에 미군 30명이 처음 도착하여 영접나간 정부의 고위인사들을 실망시키고 당황하게 하였었다. 북쪽의 우수한 무기를 당할 수 없어 대전이 함락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 지휘권을 맥아더에게 넘겨주어 낙동강에서 겨우 방어선을 구축하고 비로소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밀고 밀리던 여러 전투에서 작전상 실수한 것이 한 두 건이겠는가? 노근리 사건을 비롯하여 아주 많으리라 짐작된다. 이런 이유를 동상철거의 명분으로 삼으려 한다면 좀 부족한 생각이다. 내가 살던 옆 면소재지에는 9.28 서울을 수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지들 24명이 모여 대책을 논의 하던 중 어느 부역자의 밀고로 무장 빨치산들이 들이닥쳐 모두 체포하여 초등학교 운동장에 데리고 가 소위 인민재판이라는 것을 하여 전원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달아났다. 또 인민군들이 지나다가 밭을 매는 사람의 손을 검사하고 노동자가 아니라며 직업을 물어 국민학교 선생이라고 하자 그 자리에서 사살하는 용서치 못할 만용도 부렸다. 이런 사건들이 필자의 머리 속에도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6.25전쟁이 한민족 통일전쟁이고 한달도 못가서 통일될 뻔한 것을 맥아더가 통일을 방해한 장본인”이라고 주장한다면 너무나 어이가 없고, 이런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수이길 바란다. 설령 북쪽에 의해 통일이 됐다고 가정을 해 보자.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번영이 있겠는가? 묻고 싶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16개 우방국의 군인과 용감한 국군의 피로 나라를 지켜 지금의 자유를 향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아주 큰 시장을 확보하여 무엇이든지 질 좋고 값이 싸면 사는 시장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발전을 했다. 70년대 중반까지 북쪽의 경제가 남쪽보다 나아서 아프리카 외교전서 우리가 밀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북쪽은 남쪽처럼 미국 같은 자유시장 진출에 실패하여 지금과 같이 식량도 얻어먹는 처지가 되었다. 국토의 넓이는 북쪽이 남쪽보다 넓고 농토는 같다는 것이다. 인구도 남쪽의 절반이다. 왜 못 살고 양식마저 확보가 안되는가? 많은 원인중에서 큰 원인은 협동농장의 폐단을 뼈저리게 느껴 농민들이 실망한 나머지 생산의욕이 떨어진 탓이다. 역사를 상고해 볼 때 우리 조상들은 매우 여유있고 부드러웠다. 고려를 쓰러뜨린 이성계가 경복궁 귀퉁이에 고려시조 왕건의 사당을 짓고 위패를 봉안한 사실을 아는가? 신라와 백제가 전쟁을 하던 중 계백장군이 전사하자 신라군은 적장을 황산벌에 잘 묻어주어 무덤이 지금까지 존재한다. 얼마나 너그러운가! 사람이 죽으면 허물이 있어도 덮어주거나 역사의 평가로 그치는 것이 상례이다. 의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고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어디에 발을 붙이고 살며 자유 여행시대에 한국인이라고 떳떳하게 말하고 다닐 수가 있겠는가?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불의한 일인가를 살펴보고 불의하다면 한발 물러서고 슬기를 발휘하며 살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