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역사, 그리고 영토문제를 생각한다 / 홍정선 문학평론가 인하대교수
주한 일본대사인 다카노 도시유키가 독도는 명백히 일본 땅이라는 의도된 이상한 발언을 함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시끄럽다. 얼마 전에는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 때문에 중국과 불편한 분위기가 조성되더니 이번에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야욕이 도져서 한일관계를 냉각시키고 있다.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국가와 국가 사이의 우호관계를 하루아침에 원수지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영토문제이다. 중국과 소련은 1969년에 진보도에서 충돌함으로 말미암아, 중국과 베트남은 1979년에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함으로 말미암아,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1978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함으로 말미암아 돌이킬 수 없는 적대적 관계로 바뀌었는데, 그 직접적 이유는 모두가 영토문제였다. 이처럼 영토문제 앞에서는 대외적으로 과시하던 사회주의 형제국가라는 이념도, 수많은 원조를 통해 쌓아올린 신뢰관계도 종종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영토문제가 민족과 역사, 국가와 국민이 복합적으로 관련된 민감한 문제인 까닭이다. 한 나라의 영토에 대한 이웃 나라의 야심에는 일반적으로 주권의 확대 혹은 침해라는 사실적 측면과 함께 민족과 역사의 의미가 찬란하게 빛나거나 무참하게 부정 당한다는 정서적 측면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영토문제에 대한 시비는 이러한 사실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상대국가에 대해 누구도 제어하기 어려운 흥분상태와 국민적 단결, 그리고 공격적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손쉽게 부분적이거나 전면적인 전쟁으로 발전한다.
예컨대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이 그 전형적인 경우이다.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은 정치적 실정과 경제난이 정권의 위기를 야기하자 이를 타개하기위해 포클랜드 군도를 점령하는 군사적 모험을 감행했다. 1833년에 영국에 빼았긴, 경제적 가치가 거의 없는, 이 불모의 섬에 대해 국민들의 애국적 열정을 일으키고 이를 이용해서 정권의 안위를 얻고자 했던 것이다.
필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독도문제가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경우처럼 최악의 사태로까지 발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벌어지고 우리국민들이 흥분해 있는 지금이야말로 독도문제만이 아니라 고구려사와 만주 땅 문제까지를 포함해서 우리의 태도를 이성적으로 들여다 볼 때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약탈해간다고 말하는 상당수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만주는 우리땅이란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과, 도문강이 두만강이 아니라 송화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발해 이후 연해주 지방을 실제로 지배한 역사가 없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성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영토문제는 국민적인 분노와 공감을 손쉽게 이끌어 낼 수 있는 민감한 문제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권력자들이 여론의 눈치를 보거나 여론을 지지로 유도하고 싶은 강열한 유혹을 느끼기 쉬운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에 한편으로는 외세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무신집단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단군신화를 재창조하여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금나라와의 비현실적인 일전불사를 외치며 서경천도를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고려의 권력자들이 걸어간 이러한 길이 수백년 동안 백성들의 생활을 얼마나 끔찍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으며, 그 결과 국경을 넘어 고려를 이탈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지금 권력을 지지하는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이 민족과 역사, 그리고 영토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국민들에게 고취시키는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경계한다. 분수에 맞지 않는 잘못된 애국심과 민족주의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과 우리가 쌓아올린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의 무리한 주장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우리 자신이 꼬투리 잡히지 않는 지혜로운 태도를 지녀야 이 세계화의 시대에 번영의 길을 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