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다와 -스럽다/ 이승후 재능대교수(아동문학)
옛날에도 정치는 몹시 어려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논어에도 정치에 대한 문답이 자주 보이는데 그중 제나라의 임금이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가 한 대답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매우 시사하는 바 크다.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 곧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처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군주는 군주, 신하는 신하다운 행동뿐만 아니라 그 주어진 본분을 착실히 이행해야 함을 이르며, 정치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 맞는 실질을 갖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참으로 평범하고 당연한 구절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공자는 주역의 괘를 설명하는 데에도 주석으로 달아놓았을 만큼 중요하게 여긴 글귀다. 자신이 처하고 있는 위치에 걸맞은 사고와 처신을 강조하는 것은 명칭과 실질의 일치를 지향하는 정명론의 핵심이다.
이러한 생각을 잘 나타내는 우리말에‘-답다’와 ‘-스럽다’가 있다.‘-스럽다’의 경우, ‘사랑스럽다’,‘여성스럽다’ 등의 일반적인 용례부터 검사들에게서 받은 부정적 느낌을 반영한 '검사스럽다'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이런 정명론은 외적으로 강요받는 경우까지 있다. 학생은 학생답게 생활하고 행동해야 하며, 선생은 선생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이다. 어떤 전형(典型)을 설정하고 그러한 전형에 맞는 행실을 요구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사회 규범과 질서를 공고하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생각의 발로다. 이런 관점에 동의한다면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하고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다워야’ 한다. 그래야 제격이다.
지금까지는 적잖은 사람들이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못했고 국회의원이 국회의원답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뭐뭐다워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과연 그 기준이나 방향은 누가 만들고 누구에 의해 인정돼야 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남자아이가 부엌에 얼쩡거려도 더 이상 사내답지 못하다고 야단하지 않는 것을 보면 고정불변의 맹목적 틀이 있는 것은 아닌 듯싶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명실상부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모아진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사회를 구조적으로 튼튼하게 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의 정치는 참으로 많은 상흔을 남겼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역량만 보면 대다수가 국가 동량으로 손색이 없어 보이는데 작년 한해도 우리의 정치는 국민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데 실패했다. 오히려 눈살 찌푸리는 일들만 만들어냈을 뿐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같지 않다고 했는데 우리의 정치 현장에는 지나침의 독선만 있고 미치지 못함의 유연성은 실종된 지 오래다.
우리 정치사에 처음 기록된 야당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그 역풍에 힘입어 다수당이 된 여당의 소위 4대 법안 처리는 지나친 욕망과 감정적 대응이 그 시작과 끝을 이끌었다. 제1당이 바뀌었어도, 소위 젊은 피가 수혈되어 초선이 반수 이상을 차지했어도 우리의 국회는 국민들의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국회의원이 국회의원답지 않았던 결과다.
대통령 또한 지탄의 대상에서 빗겨있었던 것 같지 않다. 책임이 막중한 만큼, 서민들의 기대가 컸던 만큼 원망과 한탄의 소리 또한 높았던 한해였다. 개인적으로는 억울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탄핵의 질곡에서 벗어나면, 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 주면 대통령도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국민들 사이에는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기대로만 끝나고 오히려 자신만의 확신은 깊이를 더해 가는 듯 보였고 사안에 따라서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듯했다.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못하게 보인 대목이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로 고민하는 백성들의 처지에서는 이제 위정자들이 보기 싫을 수밖에 없다. 택시를 타도 시장에 가도 백화점에서도 희망은 한숨소리의 그늘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제라도 정치하는 이들이 그 그늘을 걷어내고 어려운 사람들이 진정으로 희망가를 부르게 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지난주 연두 기자회견에서 달라진 대통령의 모습을 보았다. 관점에 따라 그 의미 해석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경제를 걱정하는 절실함과 시종 엷은 웃음을 띤 채 말 한마디라도 조심하려는 신중함은 모처럼 보는 대통령다운 모습이었다. 아직도 군데군데 격한 감정의 토로가 보이긴 했지만 달라진 대통령의 모습을 우리의 정치에서 희망을 쏘아 올리려는 실천의 신호탄으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