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인천대 초빙교수 국문학

 행정수도 이전 논란과 더불어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됨으로써 이제 보수 언론을 포함한 한나라당과 여권과의 전면 대결이 불가피해 보인다. 보수 신문과 야당은 지난 3월에 이미 국회를 통과한 친일 진상규명특별법을 열린우리당에서 개정하고자 하는 것이 보수 신문에 재갈을 물려 길들이고 박근혜 대표와 야당을 탄압하여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재집권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고 이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치적 의도가 없더라도 그리고 민족정기를 올바르게 세우는데 반드시 필요하더라도 사실상 이 법안이 야당인 한나라당과 보수 신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자칫 이러한 문제가 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더불어 국론분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데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도덕경 10장에서 노자는 전국시대 어느 통치자와의 대화 형식을 통해서 ‘載營魄抱一 能無離乎’(재영백포일능무리호)라고 피력하면서 치국의 도를 갈파했다. 즉 온 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그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를 왕에게 묻고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국론통일의 중요성과 국론분열의 위험성을 역설한 것이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이 쉽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이고 이것이 또한 국가의 지도자와 더불어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자세이다.
국론이 분열되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들이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물론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적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행위가 설령 도덕적인 가치를 지닐지라도 그것이 민심을 흩어지게 만든다면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야당도 이 법안으로 인해 자신들이 앞으로 집권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을 염려하여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국론분열을 조장하여 불리한 상황을 피해가고자 한다면 집권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정치적 술수가 집권을 가능하게 하고 그 집권을 잠시 유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 집권이 절대로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비록 지금 당장의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민심은 국론을 모으고자 노력하는 쪽에 모이게 마련이며 국민들은 이러한 정치를 신뢰하는 법이다. 상대보다 내가 어떤 강점과 장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의식하고 이것을 찾아내서 더욱 발전시키기보다는 상대에게 어떤 약점이 있는가를 살피고 이것을 들추어내 자신의 약점을 은폐하고자 하는 저열한 행위의 궁극적인 종착점에는 비극적인 몰락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람의 인생이 그렇고 정치도 그렇다. 친일청산 주장에 색깔을 뒤집어 씌워 친북적이라고 매도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비호하는 측이나 상대의 과거 일시적인 부도덕성을 이용하여 이미 도취된 권력의 맛을 유지하려는 것이나 국론을 분열시켜 종국에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꼴을 맞이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집권을 이루려는 야당이나 재집권 내지는 장기 집권을 노리는 여권이나 친일청산 문제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이 청산작업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없다. 친일청산이 진심으로 과거를 반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리고 진정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악질 친일 행위자를 찾아내서 그들의 행위를 밝히는 것보다 왜 이러한 친일행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이완용이 어떤 친일 행각을 벌였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가 합방문서에 도장을 찍으면서까지 친일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를 친일행위로 내몰았던 상황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전복시키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반역자인 남파간첩과 빨치산 출신 장기수들이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과 민족반역 행위를 청산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별반 관계가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만일 이 모두가 과거 독재정권의 망령과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우리에게 더 이상 희망적인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