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한 가족관계를 위한 호주제 폐지운동

신금자 인천여성민우회 대표
이미경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의원 52명이 서명한 호주제폐지를 위한 민법중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던 5월 27일은 그 동안 각계각층의 많은 여성들이 힘을 기울였던 호주제폐지활동에 큰 획을 그은 하루였다. 민법중개정법률안의 주요내용은 호주와 관련된 전 조항과 처의 부가입적 삭제 및 자의 성과 본을 부모의 협의하에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신설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호주제폐지추진기획단’을 설치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정부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여성계가 호주제 폐지를 위해 40여년이 넘도록 노력해왔건만 호주제 폐지는 이제야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우리나라 국민은 원칙적으로 출생신고에 의해 처음으로 호적에 등재되고 호적은 혼인?이혼?입양 등 개인의 신분변동사항이 기재되며 ‘호주’를 기준으로 국민의 신분에 관한 사항을 공부(호적부)에 등록하여 이를 공증하는 제도를 호적제도라고 한다. 이와 같이 민법상의 호주제도는 호적편제의 방법이다.
현행 호주제의 현실적인 문제점은 변화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형태를 수용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가족제도라는 것이다. 남성 우선적인 호주승계순위는 남아선호를 조장하고 여성보다 남성이 우선한다는 인습을 강화하며 여성은 혼인하면 호주인 남편 또는 시아버지의 호적에, 자녀가 태어나면 아버지 호적에 편제되어 부부차별을 강화하고 여성의 어머니권리를 제한하여 결과적으로 헌법에 보장된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또한 한부모가정, 재혼가정, 미혼모가정 등에서 자녀의 성을 어머니의 성 또는 계부의 성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부성강제조항으로 인해 많은 가정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고려, 조선시대의 호적에는 호주인 남편이 사망하더라도 그 아내가 호주가 될 수 있었으므로 호주권 승계의 개념이 없었으며 제사도 아들, 딸들이 똑같이 지냈다고 한다. 오히려 현재보다 더욱 평등한 가족관계였으며 현재의 호주제는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아니라 전세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일제 식민통치수단의 잔재일 뿐이다.
호주제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하다보면 외면하거나 그냥 지나치는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자세한 내용을 묻는 남성들도 있다. 왜 남성들은 호주제 폐지에 대해 망설이는 것일까? 대부분의 남성들은 일인일적제가 되건 가족부제가 되건 아이들이 부인의 성을 따르게 될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희박한 가능성과 법적으로 보장받았던 호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는 것에 대해 정서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실제로 부모의 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는 다른 나라들은 관습처럼 아버지의 성을 따르고 있으며 관습에 앞서 법적으로 부계혈통만 강조하여 모계혈통을 무시하는 여성차별조항은 우리나라뿐이다. 이제는 형식적인 호주의 권위보다는 진정한 의미에서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는 절반의 충실한 역할이 요구되어진다. 그리고 가족이 해체될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호적과 족보를 구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 호적제도는 민법상의 공문서일 뿐이고 족보는 문중의 가계를 기록한 사적인 기록부로 호적과는 별개이다. 신분에 관한 공적 기록방식이 바뀐다고 해서 가족이 해체된다는 주장은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볼 수 없다.
호주제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관습과 생활양식, 가치관을 지배해왔지만 호주제 폐지는 시대적 당면과제가 되었다. 성간, 세대간의 대립과 분열이 아니라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이념에 일치하는 가족제도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다. 사회변화에 따른 다양한 가족생활을 존중하고 남성들도 가부장제 관습의 짐을 벗어버리고 가족의 부양과 사회발전을 여성과 함께 나누기 위한 일이다. 평등한 가족제도안에서 양성이 조화를 이루고 책임도 공유하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관계를 자율적으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5월 27일 발의된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중개정법률안’이 조속히 심의되어 연내에 꼭 통과됨으로서 21세기 새 시대에 걸맞는 양성평등한 가족제도가 실현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