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옥자 경기도 좋은학교도서관만들기협의회장
 밤을 낮 삼아 사는 덕에 T.V를 거의 모르고 산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인기 프로그램 이야기를 할 때나 유행하는 노래, 가수, 특히 코메디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면 그 대화에 끼여들지 못해 황당한 말로 분위기 깨는 소리를 해대곤 한다. 다시 말해 이 시대의 상식을 못 따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 시간을 내 체널을 여기저리 돌리며 대강의 프로그램을 섭렵하고 인기 가수 얼굴을 익히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프로그램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 예는 토론 프로그램이나 역사에 대한 재 해석 및 숨겨진 사건에 대한 뒷 이야기 및 그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 등이 그것이다.
지난 6월 6일 저녁 식사를 하며 본 한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날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야할 우리 가족 저녁 식사시간은 상머리에서의 한바탕 논쟁으로 입맛을 잃고 말았다. 프로그램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그 내용은 공개적으로 고액 세금 체납자의 세금 환수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의 논쟁점은 비록 세금을 안낸 범법자-아직 법적으로 확정받지 않았고 설령 확정을 받았다 할지라도-이지만 본인의 동의 없이 얼굴은 물론 신분을 온 천하에 드러내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주장과 돈을 두고도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은 파렴치한 인간이고 특히 국민의 의무는 물론 사회적 합의를 파기하는 자이므로 一罰百戒의 의미에서도 공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었다. 가족간 대화였기에 어떤 이론적 근거와 논리를 내세운 주장은 아니었지만 생각 할 거리를 충분히 제공한 시간임에 분명했다.
 그날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억대의 세금을 안 내고도 간 크게 고급 승용차와 화려한 집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화두는 우리 사회의 허약하기 짝이 없는 인권의식이었다. 최근에 들어 인권 단체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이로 인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는 등 사회적 분위기가 인권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그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한 개인의 인권은 거대한 힘 앞에 무참해지기 십상이다. 그날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면 T.V 카메라가 체납자의 집은 물론 공장, 사무실을 찾아가 낱낱이 비춰줌으로 인해 이미 그 체납자가 누구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공개했으며 특히 법 조항을 들먹이며 주인 동의 없이 집안으로 들어가 거실 금고까지 열어 통장 등을 낱낱이 공개하는 것이 과연 인권을 최대한 보호해야할 정부와 공공성을 표방하는 메스컴이 할 수 있는 일인가하는 점이다. 부분적 화면 처리를 했지만 아직 죄인도 아니고 설령 죄인이라 할 지라도 함부로 초상권을 침해할 수 있나? 무엇보다도 그 자리에는 법을 집행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T.V프로그램 관계자 등 세금 체납 처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집안 곳곳을 강제 공개하고 그 상황으로 분노하는 개인의 행동까지 공개하는 등 사 생활을 침해 한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상업성을 띤 방송 프로그램에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돈벌이의 수단(시청율은 곧 광고비)으로 이용된 것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날 그 가족은 법 집행을 위해 온 사람들보다는 메스컴이라는 엄청난 힘 앞에 더욱 주눅들고, 겨우 악을 써대거나, 그 마저도 못하고 변명하고, 둘러대고, 허둥대는 범죄자의 모습으로 자신이 비추어진 것에 대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를 시청하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인권이 침해받는 상황에 대한 인식 없이 프로그램 기획자의 의도대로 1억 이상의 세금을 포탈한 범죄자(?)에 분노하고(상대적 박탈감) 그 말로에 고소한 대리 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어쩌면 순진한 누군가는 혹시하는 마음에 얼른 세금을 낼 수도 있고…. 그날 저녁 우리 가족 논쟁은 대부분 토론에서처럼 합의를 이끌기 보다는 상호 확인하는 선에서 끝이 났지만 한가지 동의 한 것은 이런 일들이(인권 침해) 우리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이고 그 대표적인 것이 최근 교육인적자원부의 NEIS 파동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