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만 장봉혜림재활원 원장

 스탠포드 대학의 필립 M. 하터 박사는 우리 지구촌을 100명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로 축소 해 보았는데, 그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마을주민 100명 중에 52명은 남자, 48명은 여자. 70명은 유색인종, 30명은 백인. 6명이 세계 부의 59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6명 모두가 미국 사람. 80명은 적정수준에 못 미치는 주거 환경에 살고 있고, 70명은 문맹, 50명은 영양 부족, 1명은 죽기 직전, 1명은 임신 중, 1명은 대학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이 모습이 우리 지구촌의 모습을 실제 계산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본 모습이다.
 이 마을에서 좋은 집에 살고 있고, 먹을 것이 충분하고, 그리고 컴퓨터를 가지고 있거나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극소수의 선택된 부자이거나 아주 뛰어난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의 위험, 감옥에서의 고독, 장애로 인한 고통, 기아의 괴로움 등을 경험해보지 않은 주민은 불과 1.5명의 행운아 중의 한사람인 것이다.
 또한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엔 옷을 걸쳤고, 지붕이 있는 집에서 잘 수 있는 주민이라면, 이 마을에서 25명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입고 있는 행복한 주민인 것이고, 은행과 지갑 속에 돈이 있거나, 어딘가 잔돈을 모아 놓은 동전 통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지구촌의 상위 8명의 부자 중에 한 사람에 속하는 것이다.
 만약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살아 계시는 가운데 아직 결혼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주민이라면 이 마을에서 아주 드물게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 중의 한 사람일 것이고, 만약 떳떳이 고개를 들고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축복 받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스스로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거나, 또는 현재의 조건들에 감사함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지구촌에는 나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사실 지구촌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더욱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모가 함께 살아 계시는 축복, 몸 성히 건강하게 태어나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축복, 밥 세끼 굶지 않고 눈비 피하고 잠 잘 수 있는 축복. 이러한 축복들은 이 지구촌의 대다수 주민들이 누리는 축복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결국 모든 불행은 감사의 조건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어리석음과 죄악의 결과일 뿐이다.
 ‘햇살이 진할수록 그늘은 더욱 어두워진다’ 고 했던가 …. 행복의 조건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법. 우리가 깊고 진한 터널 같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한번쯤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우리에게 체감되는 행복지수는 더욱 높아지지 않을는지.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축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남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고, 그리고 만약 누군가 당신의 호의를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을 때 당신은 정말로 많은 축복을 받은 셈인 것이다. 게다가 이글을 읽을 수 있어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지구촌에 글자를 읽지 못하는 20억 인구보다 더욱 축복 받은 사람임을 확인한 것이다.
 4월은 장애인의 달.
 5월은 가정의 달.
 이 날들에 우리가 받은 축복들에 대한 감사를 확인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