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는 쌀을 이는데나 물기를 빼는데 쓰이는 주방기구이다. 싸릿가지의 속대 혹은 대나무를 잘게 쪼개 조그마한 삼태기처럼 엮어 만든다. 한동안 고운 철망으로 만들든지 합성수지 제품이 나돌았는데 그것을 조리라 칭하기에는 거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나마 구경하기도 힘들다. 도정기술이 발전 질좋은 쌀에 물을 적당히 부으면 밥이 되는 전기밥솥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조리를 사용하면서 쌀을 거른다거나 건진다고 하지 않고 인다고 하는 것은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즉 물결이 인다든지 불길이 인다든지 하는 것처럼 쌀을 일으키는 즉 재산을 불려준다는 소망이 담겨있다. 그런 만큼 조리는 소중하게 다루었다. 특히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파는 조리를 복조리라고 해서 사다가 집안에 곱게 걸어 두었다.
 복조리는 설날 이른 새벽에 팔러 다녔다. 아니면 섣달그믐날 자정 무렵부터 복조리 장수가 다녔는데 담장 안으로 던져놓고 다음날 오후쯤이면 영락없이 복조리 값을 달라고 찾아왔었다. 대개가 시골 노인이거나 고학생이어서 그들을 도울 겸 군말없이 값을 치렀는데 이것이 일부 장사치의 강매에 바가지로 발전(?) 주부들을 성가시게 했었다.
 그러나 복조리 장수가 오지 않으면 어쩐지 찜찜했었다. 그들이 찾아주어야 집안도 마을도 편안하고 풍년이 든다고 여겨 일부러 설 지낸 첫장에 나가 조리를 사오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사들인 조리는 두세개를 다홍실로 묶고 혹 색동 주머니와 함께 안방이나 대청 귀퉁이에 걸어두었다. 조리 속에는 돈과 엿 성냥과 흰 실타래를 넣어두었는데 이것들은 부와 장수의 상징이었다.
 설날을 앞두고 복조리까지 수입 농촌 주민들을 시름에 잠기게 하고 있다고 한다. 대나무가 흔한 담양 화순 등지와 싸리를 구하기 쉬운 산골 마을의 요즘이 한창인 복조리 엮기가 값싼 중국·베트남산에 밀려 주문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농한기 용채라도 보태볼까 하는 알뜰한 농심을 울리는 복조리 수입은 누가 생각한 것일까. 과연 중국에도 우리처럼 조리를 사용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