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 원미구와 원미동은 원미산으로 인해 생긴 이름이다. 원미산은 부천시내 동쪽 위치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부천의 진산이다. 멀뫼라고도 하고 멀뫼산이라고도 한다. 이 산을 원미라고 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부천시가 지금의 인천시 계산동에 소재했던 부평군 관할이던 때이다. 관아 동헌에서 동쪽으로 멀리 바라보이는 산이 아침 해돋을 때 그지없이 선연하고 운치가 있는 한편 해질녘 노을에 반사되는 푸르름 역시 단아하기 이를 데 없어 누구나 감탄했었다. 그러나 신임 부사가 산 이름을 물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즉석에서 부사가 원미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원미동이 지금은 부천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어 있다. 경인선 부천역에서 북향하여 중앙로가 뚫리고 79년에는 시청을 이곳에 신축하여 이전해 왔으며 82년 원미동과 춘의동으로 분리 다시 85년에는 원미동이 1, 2동으로 나뉘어 오늘에 이른다. 신시가지 원미동이 유명해진 것은 양귀자의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로 인해서이며 작가는 82년 이곳으로 이사 눈여겨 함께 호흡한 서민들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
 단편 ‘원미동 시인’도 같은 구상이다. 작가는 딸부잣집 막내인 일곱살짜리 계집아이의 눈을 빌어 골목 안 사람들의 생활상을 지켜본다. 그곳에는 원미동 시인인 몽달씨 말고도 ‘원미동 카수’ ‘원미동 멋장이’ ‘원미동 똑똑이’가 있다. 그리고 친구격인 옆집 럭키슈퍼의 김 반장이다. 이런 사람들을 재숙이라는 이름의 구박덩어리인 일인칭 ‘나’를 통해 무능한 이웃의 비겁과 비굴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열나흘 전 어느 초여름밤의 사건으로 재숙이는 김 반장과 친구하기를 포기한다. 깡패에게 쫓기던 원미동 시인이 슈퍼 앞에서 죽도록 폭행을 당하는데도 김 반장과 동네 사람들은 겁에 질려 모르는 척한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김 반장은 시인을 문병하고 시인은 히죽히죽 웃으면서 슈퍼의 잔일을 거든다.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이.
 예술을 사랑하는 부천시가 원미구 청사 후문거리를 ‘원미동 사람들 거리’로 꾸미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