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규의 ‘25시’의 끝장면은 원작과 영화가 조금은 다르다. 13년만에 처자와 해후한 주인공 모리스가 외국인 의용병으로 징집되는데 영화에서는 귀향으로 끝난다. 그 장면에서 모리스로 분한 안소니 퀸의 바보스런 웃음이 오래도록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강요당한 웃음-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순박했던 농부 모리스는 강제로 소집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철저하게 피해자가 된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 귀향하지만 그는 기쁜 줄도 모르고 어리둥절하다. 고향의 작은 역 플랫폼에서 가족들을 맞는데 낯선 아들이 하나 더 있다. 아내가 소련병으로부터 폭행당하고 낳은 녀석으로 생글거린다. 그런데도 극성스런 기자들은 사진기를 들이대고 웃으란다. “웃어요! 웃어!”
 웃음은 여러 가지이다. 냉소에 폭소 실소가 있는가 하면 미소가 있다. 담소 교소 절소 가소도 있다. 담소는 이야기하며 즐거운 웃음이요 교소는 요염한 웃음 절소는 자지러지는 웃음 가소는 거짓 웃음이다. 이런 웃음들은 대개 세가지로 분류된다. 즐거워서 웃는 웃음과 일부러 웃는 웃음 우스꽝스러워 웃는 웃음이다.
 즐거워서 웃는 웃음이야 말로 웃음의 원형으로 가장 자연스럽다. 이런 웃음에 비해 간신형의 웃음이나 허리를 비비 꼬는 요염한 웃음에다 일부러 웃는 웃음은 어색한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가 자주 웃는다는 속담처럼 ‘癡者多笑(치자다소)’도 좋을 것은 없겠는데 거짓 웃음보다는 낫겠다.
 아무튼 웃음은 사람만의 특징이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은 울고 짖을 수는 있어도 웃지 못한다. 웃음은 생활리듬을 윤활케 하여 건강을 돕는다. 옛말에도 ‘소문만복래’가 있으며 한번 웃음에 한번 젊어지고 한번 성냄에 한번 늙는다고 했다. 미국의 어느 의학자는 ‘하루 15번 웃으면 병원이 필요없다’고 했다. 이것이 웃음의 미학이요 웃음의 건강학이다.
 이천시가 스마일 운동의 일환으로 ‘웃는 얼굴 100선’ 사진전을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