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아저씨께. 저는 여덟살입니다. 제 친구들 중에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아빠는 신문에서 산타가 있다고 하면 진짜로 있는 것이라고 해요. 저에게 진실을 말해주세요. 정말 산타클로스는 있나요?’
 이상은 1897년의 가을 어느날 버지니아라는 소녀가 뉴욕선 신문사에 보낸 편지이다. 편지를 받은 편집국장이 기자에게 사설로 답하도록 지시했다. 논설기자 프랜시스 처치는 애정이 넘치는 내용의 사설을 썼다. 19세기말 미국 사회는 논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그때 가장 유명한 논설로 꼽히는 기사가 지금은 고전이 된 처치의 논설이었다.
 ‘버지니아에게. 친구들이 잘못 알고 있군요. 의심 많은 시대에 의심하는 버릇을 가진 모양이군요. 자신이 직접 보지 않은 것은 믿지 못하지요. …분명 산타클로스는 있어요. 사랑과 관대와 헌신의 마음이 존재하듯 그는 틀림없이 있답니다. 그리고 그가 어느 곳이든지 나타나고 버지니아에게도 가장 값진 아름다움과 기쁨을 줍니다. 만일 산타클로스가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쓸쓸할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합리적인 미국 사회에 이 사설이 보도됨으로써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한 철부지 소녀의 물음에도 사설로 답하는 미국 신문의 풍토가 부럽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81세로 버지니아가 사거했을 때도 이번엔 뉴욕타임스가 보도,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었다. ‘산타클로스의 친구’라는 표제로였다.
 요즘 어린이들은 영악해서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예상보다 많은 어린이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다고 한다. 아무리 컴퓨터나 공상과학 영화에 물들었어도 순진한 동심이 살아있다는 반가움이다. 다만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산타클로스의 얼굴이 유치원 기사 같다거나 선물을 싼 종이가 백화점 포장지였을 때 가짜 같다고 느꼈다는 반응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자 여기저기 산타클로스가 등장하고 있다. 어린것들이 눈치채듯 산타클로스의 분장에 세심한 성의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