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전두환의 신군부는 운동권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제압했다. 미국이 광주학살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품었던 학생들은 미문화원에 불을 지르고, 분신 투쟁을 감행하면서 양키 고홈을 외쳤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싸움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군사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사상 무장을 통한 조직화와 정치 세력화가 시급했다.
민주화 세력은 80년대 중반 민중 민주주의 혁명파(PD)와 민족해방 민중 민주주의 혁명파(NL)로 분리됐다. 그러다가 1986년 민족해방파(NL)가 학생운동의 다수파가 된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수용한 NL은 반미자주화와 민족통일을 외쳤다. 이들은 통일전선전술로 자유주의 정치권과 공조했고, 파시즘적 선동술로 여론을 조작하며 정당과 시민·노동 단체 등을 장악해 나갔다. 그런데 민주당의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은 더는 민족해방파도 반미주의자도 아니다. 권력에 중독된 자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이 NL 공동체라는 점은 분명하다. NL 주체사상파의 수령론 문화에 길들여진 탓인가? 수직적 권위주의적 집단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은 찾기 힘들다. 사실 왜곡과 날조, 음모론적 선동도 거리낌 없이 실천하기도 한다.
극우 유튜버들이 민주당 의원들을 주사파라고 비난하는 것은 철이 지난 색깔론이며, 지적 게으름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다. 반공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의 승리와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멸망으로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 민족해방파의 문화적 습속에 초점을 두면서 비판하는 건 중요하지만, 자신들도 권위주의를 얼마나 탈피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의 아킬레스건도 불통의 권위주의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보수든 진보든 승자독식 세계관에 갇혀 피라미드 정상에 앉아 특권과 반칙의 수혜자로 안주하는 점이다. 이들의 생각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로 귀결된다. 1998년과 2008년 경제 위기의 고통을 서민에게 떠넘기면서 자원을 독점한 승자들은 사다리 걷어차기와 사익 추구에 몰두하며 국가와 기업을 마피아처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눈에는 투명 인간으로 전락한 비정규직의 국민과 사회안전망의 혜택 없이 민생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보이지 않는다. 1930년대생 산업화 세대와 군부독재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1960년대생 민주화 세대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갑질의 수사학에 동의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방치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모욕적인 언어는 민주공화국의 이념에 어울리지 않는다. 돈 많고 힘 있는 자들의 오만과 편견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다수 국민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이며, 정치의 역할 아닌가.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