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날아오른다”라는 말을 했다. 격동의 시대일수록 참된 지식을 얻고 지혜가 생겨나기를 열망하지만, 그 시기가 거의 다 지나가거나 끝나야만 소용돌이에 가려져 있던 실상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타락과 퇴행을 보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보다는 그걸 지키고 가꾸는 게 더 힘들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국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만이 아니라 종교, 법조, 시민사회단체 등 그 어떠한 분야 및 집단의 인물도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 지도층의 상당수가 정당한 방법으로 부와 권력, 명성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저성장, 청년 실업, 인구 절벽, 비정규직 양산, 양극화의 심화 등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도 거대 양당은 지역과 세대에 의존하는 강성 지지층을 믿고, 어떤 비전과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10∼20%에 해당하는 상류층만 대변하고 있다.
80%에 속하는 국민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건 거창한 개혁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상식과 규칙, 즉 법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 회장, 실세 정치인, 갑부 연예인은 큰 잘못을 저질러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 설사 구속되더라도, 금방 나오거나 특별사면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의 기능을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누고 있다. 삼권 분립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독재를 방어하는데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또 현명한 정치적 결정을 도출하게끔 유도한다. 민주주의는 어떤 구체적인 국가 목표의 실현을 지향한다기보다는 그런 목표를 찾아 나가고 실현해 나가는 과정과 절차를 통해 합리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도록 해주는 정치 체제이다.
삼권 분립은 국가적으로 현명한 선택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다. 같은 사안과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르게 판단한다면, 어떤 판단이 옳은지 논란이 생긴다. 이때 비판과 토론은 활발해질 것이고, 이 과정에서 그릇된 판단은 배제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안이 선택될 것이다.
분립된 권력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면 다양한 주장이 전개될 것이다. 새로운 실험적 활동이 활성화되고, 창의성이 살아나며, 역동성이 커질 것이다. 삼권 분립은 활기차고 약동하는 사회로 이끌어 가는 엔진이다. 80%의 국민은 땀 흘려 일하면서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법질서도 잘 지키고 있다. 이 나라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몰아넣은 건 반칙과 편법에 능수능란한 상류층 엘리트들이다. 사회 지도층이 사법부를 두려워해야만 국가의 기강이 확립된다. 사법부의 환골탈태로 사법 정의가 실현된다면, 80%를 위한 정치의 길이 조금씩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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