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일제하 항일독립영웅 가운데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홍범도 장군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로도 잘 알려진 홍 장군이 10월 25일로 서거 80주기를 맞았다. 우리는 불과 2년 전 8월의 그 감격스러웠던 설렘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공군의 극진한 예우와 호위 속에 홍 장군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드디어 서울공항으로 봉환됐기 때문이다. 서거 78년 만이다. 혹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동포들이 반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많았다. 그리고 레닌의 은제 마우저(C96) 권총이나 소련공산당, 고향인 평양 등을 거론하며 유해 봉환을 북한이 먼저 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컸다. 그러나 역시 대한민국의 위상은 생각보다 막강했다. 그 순간만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과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유해 봉환 2년 만에 홍범도 장군이 고국 땅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념'이 중하다며 이념 전쟁을 선포하더니 덩달아 육군사관학교는 교정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국군의 초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참에 해군도 '홍범도함' 명칭을 바꾸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분위기라면 조만간 두 번의 건국훈장도 재검토되고, 아예 교과서에서도 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항일무장투쟁사가 삭제될 판이다. 우리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번에도 '정치'가 문제였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역사는 달라지지 않으며, 국민의 시선도 있는 그대로다. 그러나 지역과 세대를 가르고 이념의 잣대로 역사까지 갈랐던 정치가 이번에는 기어코 홍범도 장군을 향해서도 갈라치기에 나선 것이다. 레닌과의 회동과 그로부터 받은 권총, 소련 공산당 가입, 자유시 참변 등은 홍 장군을 향한 비난과 모욕의 무기가 됐다. 이는 역사에 대한 단순한 무지나 몰이해의 수준이 아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은 물론 역사마저 두 쪽으로 가를 수 있다는 오만과 만용의 광기다. '나쁜 정치'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홍범도 장군은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조국 땅에서,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동포들에 의해 졸지에 '빨갱이'가 돼버린 셈이다. 무지하고 몽매했던 백 년 전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오늘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다. 백여 년 전 두만강 건너 간도 땅에서 일제에 의해 자행된 참극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당시 이웃 중국과 러시아의 항일투쟁은 우리의 동지였다. 오늘날 그깟 정치가 천하를 가른다고 해도 그건 순간의 광기에 불과하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제아무리 메쳐 본들 역사도, 그를 향한 국민의 추모도 두 쪽으로 갈라지진 않을 것이다. 서거 80주기를 맞는 오늘 아침은 참으로 씁쓸하고 아프다.

▲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박상병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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