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이 너무 높아서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나왔던 얘기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미 한국의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을 넘어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올해 3분기 기준으로 한국의 가계부채는 1877조원, 사상 최대 규모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작년 말 기준 108.1%로 세계 2위권이다. 세계 평균이 62% 정도인 점을 참작하면 높아도 너무 높다. 게다가 한국의 가계부채는 대부분 부동산 등 비금융 자산에 집중돼 있다. 따라서 금리가 높거나 부동산 버블이 꺼질 경우엔 말 그대로 가계부채가 시한폭탄처럼 터질 위험성이 더 높다.
최근의 가계부채 폭증 원인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초래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제일 크다. 가계부채 비율이 GDP의 100%를 넘은 것도 문재인 정부 때다. '빚투'니 '영끌'이니 하면서 온 나라를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주범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광풍'이었다. 그 후 부동산 광풍이 잦아들면서 정권도 교체됐다. 윤석열 정부가 최소한 가계부채 대책만큼은 철저할 줄 알았다. 이미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지목됐을뿐더러 자칫 그 뇌관이라도 건드리면 진짜 폭탄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씩 진정되던 부동산 경기의 경착륙이 우려 됐던 것일까. 아니면 내년 총선 때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더 걱정이었을까. 윤석열 정부에서도 부동산 시장을 띄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재건축 사업 청사진을 제공하더니, 세제와 대출규제도 완화하기 시작했다. 금리가 인상되는데도 정부는 또 빚내서 집을 사라는 시그널을 계속 보냈다. 심지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도 상품으로 내놨다. 그러자 가계대출이 다시 가파른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가계부채의 위험성은 더 커졌다. 마치 '폭탄 돌리기'를 하듯이 가계부채는 언제 터져도 할 말이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 셈이다.
급기야 정부가 가계대출을 다시 규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삼모사가 딱 이런 경우다. 이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는 우려할 대목이다.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으면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도 한마디 했다. 김 실장은 지난달 29일 고위 당·정·대 협의회에서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기업부채로 인해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의 몇십 배 위력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너무도 무책임해 보인다. 그래서 정부는 어떻게 할 거냐고, 또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정부도 딱히 답변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저 국민이 알아서 판단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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