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동두천 동광극장은 단관극장이다. 상영관이 하나여서 한 번에 한편씩만 개봉한다. 동시에 여러 영화가 상영되는 멀티플렉스가 대세가 되기 전까지 극장은 으레 그랬다. 표 한 장으로 철 지난 영화 여러 편을 잇따라 보여주는 '고무신극장'이냐, 최신작 한 편만 거는 개봉관이냐는 차이만 있었다. 영화와 극장 시스템이 바뀌면서 동광극장 같은 단관극장은 전국적 '희귀템'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동광극장은 가장 오래된 단관극관이다.

1950년대 동두천에는 동두천극장, 신영극장이 있었으나, 1959년 동광극장이 문을 열면서 두 극장은 사라졌다. 동두천시민은 물론 미군들도 곧잘 찾았던 동광극장은 1986년 현재 대표(고재서 씨)네가 인수해서 고쳐 지었다. 극장 출입구와 스크린 위치가 완전히 바뀌었다. 극장 로비에 걸려 있는 1960년대 사진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현재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동광극장은 문화극장(원래 케네디홀)과 더불어 수십 년 동안 동두천의 대표 문화공간이었다. 경기도는 올해 10월 동광극장을 '노포'(유서 깊은 점포)로 지정했다.

그러나 동광극장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 개인사업자에게 시민의 추억이 서린 공간이므로 적자가 커도 버티라고 주문할 수는 없다. 자본의 논리상 단관극장은 멀티플렉스를 이기지 못한다. 그렇다고 폐관을 방관하기엔 동광극장의 장소성이 크고 깊다. 가칭 '동광극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동사모)이 결성을 서두르는 건 이 때문이다. 더구나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허무하게 헐리는 걸 목격한 터라 그 의미가 한결 중차대해졌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개관해 2015년 원주 유일의 단관극장이 되었다. 2016년부터 극장을 보존하자는 시민활동이 7년간 줄기차게 이어졌다. 그 결과 2022년에는 원주시가 매입하기로 했고, 리모델링 국비 지원까지 확정됐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바뀐 새 시장은 철거 쪽으로 급선회했다. 시 재정에 지나치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였다. 올가을 아카데미극장은 격렬한 반대 속에 철거에 들어갔다.

극장은 문화가 복사·번역·복제되던 공간이다. 관객들은 함께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고, 감정과 정서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시민이 되어갔다. 문화환경이 빈약했던 시절 극장은 가장 손쉽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공간 역할도 했다. 동두천의 문화적 특성 8할이 동광극장을 거쳤다 하면 지나칠까. 추억의 공간이어서가 아니라 지역성이 주조되던 장소이기에 동광극장은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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