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신도시가 개발되기 전, 김포 장릉산 중턱에 올라 한강 쪽을 바라보면 일망무제 들판이 펼쳐졌다. 홍도평(홍두평)이라 했다. 썰물 때 나문재 붉은 잎이 벌겋게 드러나서 '붉을 홍(紅)'자 홍도평이었다가, 논이 된 후에는 기러기가 떼로 날아들어 '큰 기러기 홍(鴻)'자로 바뀌었다던가. 하여튼 홍도평 일대 김포평야에서 나는 쌀은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 붉은빛이 도는 자광미가 김포쌀을 대표했다. 그 명맥은 오늘날 '김포금쌀' 브랜드로 이어진다.
김포는 4면이 물로 둘러싸였다. 동쪽으로 한강, 북쪽으로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한 조강, 서쪽으로 강화와 김포 사이 서해바다 염하, 남쪽으로 굴포천을 이용해 만든 경인아라뱃길. 한강과 굴포천 물길은 홍도평을 비롯해 김포와 고양, 멀리 부천과 인천까지 평야 지대를 형성해 놓았다. 이 들판을 통칭하여 '김포평야'라 부른 까닭은 김포 쪽 곡창이 가장 뛰어난 덕이다. 김포평야는 들판도 명성도 빠르게 소멸하는 중이다.
하성면 전류리에 한강 천삼백리(514㎞) 최하류 포구가 있다. 전류리 앞 한강은 만조 때 바닷물이 밀고 올라와 민물과 섞이는 '기수역'을 이룬다. 회귀성 어종인 웅어를 비롯해 어종과 어족이 풍부하다. 한강 수운이 끊기고, 국가안보를 이유로 고기잡이를 막던 시절에도 전류리포구에는 허가받은 어부들이 있었다. 철책이 아직 걷히지 않는 포구의 철조망 너머로 고깃배 몇 척이 좀 쓸쓸하게 묶여 있다.
전류리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한 세대 전 농촌 그대로이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길 양편으로 중소공장들을 줄지어 나타난다. 김포는 근래 수도권에서 공장이 많이 들어온 곳으로 유명하다. 서울 쪽 고촌읍이나 한강신도시와는 분위기가 영판 다르다. 월곶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북녘을 향해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점등하던 애기봉과 조강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다. 최근 새로 단장한 애기봉 일대에서는 남녘과 북녘 마을이 서로 훤히 보인다.
대명포구 들렀다가, 김포에서 해병대 하사관으로 반평생을 보낸 이가 1990년대에 개발했다는 대명온천(약암홍염천)을 돌아 북변동으로 내려오면 '해동1950'이라는 문화공간과 마주친다. 한국전쟁 때 시작된 해동서점(해동서적)을 리모델링해 '문화가드닝'을 시도하는 장소다. 근대문화유산인 김포성당까지 구경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천등(천둥)고개를 넘는다. 강화도령 일가가 귀양 갈 때 천둥이 쳤고, 임금이 되려고 서울로 가는 길에 철종이 천둥같이 소리를 질렀다는 고개다. 서울 가면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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