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버나드 마넹은 <선거는 민주적인가>에서 “대의 정부는 지금도 여전히 그것이 처음 설립되었을 때의 방식, 즉 사회적 신분이나 생활 방식, 그리고 교육에 따라 시민들과는 구분되는 소위 엘리트들의 통치로 남아 있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은 단지 새로운 엘리트의 부상과 다른 엘리트의 퇴조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민주화 이후 정권 교체 과정을 살펴볼 때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거대 양당이 밥그릇 싸움을 위한 적대적 공생 관계를 형성해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거대 양당의 주류인 한국 엘리트들은 학벌만 좋은 천민 엘리트이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부동산 투기, 재산 축적 과정의 부도덕성, 병역 비리 의혹, 위장 전입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된 원인은 한국 사회의 압축 성장 때문이다. 압축 성장은 천민자본주의를 낳았고, 이 과정에서 대다수 엘리트는 출세지향적인 삶에 매달려 윤리와 품격을 잃어버렸다.
천민 엘리트들은 시민 이익보다는 가족주의에 충실하다. 나아가 정당의 보스를 중심으로 한 조폭식 의리와 혈맹 관계를 중시한다. 특권과 반칙에도 익숙하다. 이들의 삶은 서민의 삶과 철저히 괴리돼 있다. 진영 대결을 위한 활동에는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열정을 다하면서도 민생 문제에는 관심과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이제 국민은 민생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천민 엘리트와 결별하고, 민생 정치가를 찾아내야 한다. 민생 정치에 복무할 정치가의 자격과 요건에는 도덕성, 공감 능력, 협력의 정신, 영적 지능 등이 있다. 도덕성이 없으면 국민이 안심할 수 없어 신뢰가 무너지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여 지속 가능한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공감은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마음과 행동이다.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국민과 소통해야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다. 요즘 세상은 학문과 산업,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통섭과 융합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협력의 정신을 발휘해야만 여야의 경계를 허물고, 조직과 정당 간 다양한 융합이 일어날 수 있다.
영적 지능은 신체 지능, 지적 지능, 감성 지능 등 다른 모든 지능을 주관한다.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건 이 영적 지능에 달려 있다. 영적 지능은 언러닝(Unlearning)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는 '학습 해제'를 말하는데, 지금까지 자신들이 옳다고 학습했던 것들을 지우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자세를 뜻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목표를 마감한 한국 사회에서 이 능력은 정치인에게 필수적이다.
다가올 총선, 특정한 정당을 떠나서 도덕성, 공감 능력, 협력의 정신, 영적 지능을 갖춘 정치인, 민생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정치가들을 공복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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