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긴 터널을 뚫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들은 학생과 시민이었다.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가져온 주도 세력으로서의 시민의 자부심은 민주화 이후 시민단체가 우후죽순으로 결성되어 활동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자 시민 스스로 조직을 만든 것이다. 경제적 불균형, 인권, 환경, 여성, 청소년, 정보격차 등 수많은 사회 문제들을 정부와 정치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런데 수많은 시민단체가 설립 당시의 목표를 실현하는 활동 이외의 일에 관여하거나 공공 이익에 맞지 않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공공적 목적을 표방하면서도 정부나 정치권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봉사하고 협조한 것이다.
시민단체가 정치권과 결탁하면 순수성이 훼손되면서 조직이 타락하고 건전한 비판 기능을 상실한다. 시민단체는 정부 정책과 실천을 비판할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활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시민단체가 관변화하면 그 설립 취지는 퇴색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권력을 감시하기는커녕 자리를 얻는 데 급급할 때 시민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제5공화국 시절 새마을운동중앙회,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등의 단체들과 이명박 정부 시절 뉴라이트 성향의 단체들이 모두 이런 경로를 밟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사태 논란 등은 시민단체의 부패와 타락의 한 예이다. 제3섹터라 할 수 있는 시민단체들은 어용이 돼 가고 있다. 시민단체 간부들의 행로도 마찬가지다. 활동가로서의 초심을 잊고 금배지나 장관, 청와대 요직 등을 향해 달려간 사람들이 대다수다.
시민운동의 정치화는 한국 사회의 부패를 심화시킨다. 문재인 정부 시절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민주당·행정부·청와대의 요직에 대거 발탁됐다. 그러면서 수많은 시민단체가 정부의 꼭두각시 노릇에 충실했다. 지방 권력과 특정시민단체가 정치적·경제적으로 은밀히 거래하고 유착된 사례도 있다. 인천의 경우 민선 7기 박남춘 전 시장 4년 동안 전체 주민참여예산 1382억 원 중 절반이 넘는 798억 원이 불법·편법으로 편성되고 집행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순실 사태 때의 국정 농단에 버금가는 시정 농단 의혹이다.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스스로 권력화되어 불법을 주도하고 권력을 탐하는 시민단체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시민단체는 권력을 상대로 무서운 '파수견(Watch dog)' 역할을 할 때 존재가치가 있다. 그렇지 않고, 정치적 중립성을 저버리는 순간 권력의 '호위견(Guard dog)'으로 전락한다. 한국의 시민 사회는 특정 세력에 기대는 진영론을 벗어나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비판의식을 지닌 시민단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시민의 정의와 진실을 대변하겠다는 양심과 순수함을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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