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한국인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승자의 편에 서기 위해 어느 줄에 서건, 편 가르기에 나선다. 학연과 지연은 편 가르기에서 중요한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능력보다 학벌이 중요하고, 실력보다 강자 편에 줄 서는 것을 출세의 기회로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학벌 중심의 사회는 극심한 입시경쟁과 부정 입학, 과도한 사교육비 가중으로 이어져 개인과 사회의 에너지를 낭비한다.

학벌을 강조하는 사회는 엘리트주의를 양산한다. 엘리트주의는 학벌로 국민을 계층화하고 등급으로 학교를 서열화한다.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 소재 명문대 출신들이 공직이나 사회 요직을 싹쓸이하도록 입시와 취업 구조를 제도화한다. 엘리트주의가 상식이 되면, 학력 간 임금 격차와 학벌 중심의 평가가 학교와 기업 문화에 똬리를 튼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이 문화에 순응하며, 입학·취업·승진이 학벌로 결정되는 현실을 인정한다.

자원이 없는 한국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기까지는 교육의 힘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 세월 서울대나 사립 명문대의 인재들은 첨단 지식과 기술을 확보해 산업화의 성공에 기여했다. 그러나 학벌주의 뒷면에 승자에 포함되지 못해 피폐해지고 자괴감에 빠진 많은 사람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벌주의가 득세하면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 능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출신 학교의 지위만을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여기는 사회는 많은 폐단을 낳게 된다. 대학 졸업장에 의해 평생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면, 잠재력이 많은 탁월한 인재들의 도전 기회가 봉쇄될 가능성이 높다. 사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아 명문대에 입학한 부유층 자녀들과 공정한 기회를 받지 못한 저소득층 자녀들의 불균형 격차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를 극복하려면 입시제도의 개선과 함께 대학의 뼈를 깎는 개혁이 요구된다. 수능을 자격시험으로 전환하고, 학생을 다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여 입시전형에 적용해야 한다. 지방대학 육성을 위해 지역 내 산업별 특성과 특화된 학과를 중심으로 특성화 대학을 지정하고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 기업도 능력 위주의 공평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학벌주의에서 능력주의로의 대전환이 일어나면 대한민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명문대 집중 현상이 사라지면서, 전국의 대학은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배경이나 돈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이 있다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사회,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사회, 인재를 뽑을 때 학벌이나 간판보다는 인성과 능력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학벌주의를 버리고 능력주의를 핵심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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