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착시 그림이 있다. 보는 이에 따라 젊은 여자를 그린 그림으로 보이기도 하고, 늙은 여성 모습으로 보이는 그림이다. 제목은 '나의 아내와 시어머니'. 영국 만화가 윌리엄 엘리 힐이 1915년에 그렸다.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음직 하다. 궁금하다면 당장 검색해 보시라.
나는 처음 보았을 때 젊은 여성이 보였다. 문제는 늙은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그림이 어찌 할머니 그림이란 말인가. 아무리 다시 들여다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같은 그림에서 늙은 여성이 보였다. 젊은 여자의 귀로 보이던 부분이 노파의 눈으로, 턱이 코로 보이자 젊은 여자를 사라지고 노파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신기한 점은 한 번 노파가 보이니까 볼 때마다 시어머니가 먼저 보이고 젊은 여자는 눈을 한 번 끔뻑해야 보였다는 사실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심리학자들이 이 그림으로 실험을 했다. 그림을 0.5초 보여주고 나이에 따라, 성별에 따라 젊은 쪽을 먼저 보느냐, 나이 든 쪽을 먼저 보느냐를 따져서 해석을 내놓았다. 나이가 젊은 축은 젊은 여성을 먼저 보고, 나이 든 사람들은 노파를 먼저 본다는 게 그들의 결론이었다. 글쎄……. 나의 경험에 대입하면 딱 맞는 해석 같지 않다. 어쨌든, 그림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도 에드윈 보링이라는 심리학자의 논문에 등장한 덕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그림에는 '보링의 인물'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보링의 인물'을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 나의 믿음, 나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들만 채택하는 성향이 확증편향이다. 이때 증거란 '젊은 여자·나이든 여자' 식의 이미지 같은 것에 불과하다. 같은 일을 두고 나와 반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내가 수집한 증거(이미지)가 확증편향의 결과일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위해 사람들의 확증편향을 악용하는 세력들이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 한 컷 카툰으로 착시와 편견을 논하던 세상도 확증편향을 기하급수적으로 강화하는 알고리즘 시대로 바뀌었다. 그래도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나의 확증편향부터 찬찬히 점검해 볼 일이다. 쉽지 않겠으나, 나의 믿음, 나의 주장이 확증편향을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물을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마음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능력부터 기를 일이다.(사도시마 요헤이, <관찰력 기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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