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도 양평 고속도로 노선변경과 관련하여 정치권에서 공방이 거세다. 그런데 이 문제가 정치권 공방으로 번질 사안인지 의아스럽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고속도로 노선 결정은 교통량과 주행시간·거리, 환경영향과 건설비용 등 주로 공학과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결정되어 큰 잡음이 없었는데, 이번 양평 고속도로 문제는 정책 결정 과정이 뭔가 투명하지 않은 것 같다.
정책과정은 일련의 시스템(system) 활동으로 환경과 끊임없는 투입과 산출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정부는 환경으로부터 인력, 재정, 정보, 에너지 등을 투입받아 정책시스템 내부과정을 거쳐 환경으로 정책·사업을 산출하는 일련의 시스템이다. 그런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내부에서 투입이 산출로 전환되는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그래서 시스템 내부과정을 투명도에 따라 화이트박스(white box)와 블랙박스(black box)로 구분한다.
화이트박스는 시스템 내부에서 투입이 산출로 전환되는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 공개되는 방식이다. 반면에 블랙박스는 이 과정이 베일에 가려져 투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산출로 전환되는지 숨겨진 방식이다. 예를 들어 민원처리과정을 보면, 민원이 접수되면 담당 부서에 전달되어 심의과정을 거쳐 일정 기간 내에 민원인에게 결과를 통보한다. 이렇게 의사결정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민주사회에서 시민들이 정부를 믿고 공권력을 위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양평 고속도로 노선변경 과정에서는 정책결정시스템이 블랙박스로 작동한 듯하다. 시스템 외부환경에서 어떤 정보가 투입되어, 의사결정시스템 내부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외부환경으로 노선변경이라는 결과가 나왔는지 투명하지 않다.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은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사회가 민주화·개방화되면서 좀 더 투명해졌다는 것은 바로 정책결정과정이 블랙박스에서 화이트박스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이슈화된 주요사안들-양평 고속도로 노선변경, 홍범도 흉상이전, 감사원 행태 등-을 보면, 과거 깜깜한 블랙박스 시대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런 때일수록 신문과 방송 등 매스컴의 공정한 보도와 본연의 역할이 더 요구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언론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알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마땅히 알려야 한다”는 '세계 언론계의 별'로 불렸던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의 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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