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작고한 인텔(Intel) 창업자 고든 무어(1929~2023)는 반도체 기술발달이 2년마다 속도와 용량이 두 배가 되는 시대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이후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은 정보통신기술이 12개월마다 두 배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는 '황의 법칙'을 발표했다. 두 사람 모두 시대가 엄청 빠르게 변하는 고속사회의 등장을 예견하였다. 그런데 이보다 한참 앞선 150년 전에 고속사회 등장을 알린 동화책이 있다. 바로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2편 '거울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거울 나라의 엘리스'에는 붉은 여왕이 지배하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의 길은 계속 후진하여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고,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자리 뛰기라도 해야 한다. 본문의 내용을 잠시 감상해 보자.
엘리스는 붉은 여왕과 함께 달린다. 그런데 아무리 달려도 주변이 전혀 바뀌지 않고(중략) 똑같았다. 그제서야 엘리스가 외쳤다. “말도 안 돼. 모든 게 아까와 똑같아요. 제가 사는 곳에서는 오랫동안 달리고 나면 보통 다른 곳에 도착해요.” 그러자 여왕이 말한다. “정말 느린 나라구나! 여기서는 만약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적어도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무엇을 말하는가? '거울 나라의 엘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지배하는 마을은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를 그대로 보여준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고,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달려야 하며,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배는 더 노력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슘페터는 자본주의사회가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야 하고, 이러한 창조적 파괴가 끊임없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배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사회는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변화와 혁신이 있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 그래서 과거 기술은 지속해서 새로운 기술로 대체되며 기술변화와 혁신이 지역에서 끊임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그럼 무엇을 의해 기술변화와 혁신이 발생하는가? 바로 사람과 R&D(연구개발) 활동이다. 그래서 우수한 인적자원의 육성과 R&D 활동이 도시 성장의 핵심 요인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천의 대표적 도시 R&D센터인 인천연구원에 충분한 인력과 재정이 지원되고 있는가? 인천의 연구개발 현실을 심각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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