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9번째 대통령 워런하딩의 모습/사진제공=핀터레스트
▲ 미국의 29번째 대통령 워런하딩의 모습. /사진제공=핀터레스트

미국의 29번째 대통령, 워런하딩(Warren G.Harding).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 훈훈한 목소리까지... 미남의 전형적인 요건을 갖춘 인물이다. 덕분에 대중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고 수많은 팬층을 거느리며 미국의 2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사망 후 그의 불륜 행각과 도덕성, 무능함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최악의 대통령 1위, 무능한 정치인 1위를 놓치지 않는 인물의 고유명사가 됐다. 이를 두고 심리학 용어로 ‘워런 하딩의 오류’라고 한다. 외모만 중시해 사람의 행실이나 마음가짐을 보지 않는 태도를 지적하는 의미다.

▲ 듀란듀란 /사진제공=핀터레스트
▲ 듀란듀란 /사진제공=핀터레스트

세계적인 영국의 록밴드, 듀란듀란. 1980년대 전 세계 신스팝의 최전성기를 이끌며 잘생긴 외모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그룹이지만 화려한 외모때문에 오히려 실력이 저평가된 대표적인 뮤지션으로 꼽히고 있다.

이 사례들은 만연해진 외모지상주의 속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또 얼마나 다양한 편견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처럼 우린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는 ‘新외모지상주의’ 시대의 이면들을 새롭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일상으로 스며든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이야기다.

/사진제공=핀터레스트
/사진제공=핀터레스트

▲외모 칭찬도 차별…‘예뻐’, ‘잘생겼어’의 역설

4년차 직장인 정모(33)씨는 경력직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예쁜 외모로 인해 업무 능력을 평가 절하당했다.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지만 입사 후 “프로젝트도 남성 동료들에게 몸매로 유혹해 도움받은 것 아니겠냐”며 차별적 발언만 들릴 뿐이었다.

예쁜외모, 잘생긴 외모로 오히려 역차별당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성희롱·스토킹 등 범죄 표적이 되거나 능력이 외모에 가려져 업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이들은 외모때문에 직장 내 따돌림을 경험할 뿐 아니라 ▲원치 않는 구애 ▲만남 강요 ▲사귀는 것처럼 소문 ▲불법 촬영 ▲불법 촬영 사진 유포 ▲성적 부위 언급 등 젠더폭력 형태로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여성 직장인 이모(30)씨는 예쁜 외모로 인해 회사 대표로부터 원치 않은 구애를 당했다. 면접 때 ‘얼굴이 예쁘다’는 이유로 뽑았다는 회사 대표는 이씨에게 사적으로 연락하고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데 왜 남자친구가 없느냐’, ‘내가 몇 년만 젊었어도 사귀었을 텐데’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건넸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0월14일~21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원치 않는 구애를 당한 남녀 직장인은 23%로 나타났다. 만남 강요는 5.6%, 사귀는 것처럼 소문은 11.2%가 경험했다. 불법 촬영을 당한 경우는 3.7%였으며 성적 부위 언급 등은 전체 18.9%로(여성 12.1%, 남성 6.8%) 여성의 경우에서 더 높게 집계됐다.

일상 속에서 ‘예쁘다’, ‘잘생겼다’ 같은 외모 칭찬은 흔한 일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지양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 외모에 대한 칭찬은 또다른 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개인방송을 통해 “누구도 타인 외모를 정형화해 평가하고 재단해서는 안 된다”며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일터 등에서도 위력·위계가 있는데 이 같은 관계에서 취향을 칭찬하더라도 결국 평가적 요소가 될 수 있고, 이런 모습을 계속 갖춰야 긍정적인 평가가 되나보다라는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고용노동부가 채용공고 주요위반사례를 공개했다./사진제공=고용노동부
▲ 고용노동부가 채용공고 주요위반사례를 공개했다./사진제공=고용노동부

▲172cm 훈남 알바 구해요

외모에 대한 고민은 비단 여성들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외모 차별 피해가 더 큰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들의 고민도 결코 적지 않다.

24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국내 초·중·고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를 보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남학생은 15.1%였다. 이중 5.7%가 ‘외모나 신체적인 조건으로 불행하다’고 답했다. 외모나 신체적인 조건 탓에 불행하다고 답한 여학생은 11.7%로 남학생보다 높았지만, 남학생들도 외모로 인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부 구직 시장에서도 남성들의 외모를 중시하는 현상을 엿볼 수 있다. 지난 2월 음식점 홀 서빙 직원을 채용하면서 ‘172cm 이상 훈훈한 외모’를 조건으로 남자 직원을 채용하려던 음식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성차별적 광고를 했다면서 단속되기도 했다.

남성들의 외모 고민 중 하나는 ‘키‘다. 키가 작으면 결혼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 불리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반응이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작은 키‘, ‘키작은 남자‘에 대한 고민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0대 직장인 이모(36)씨는 “어릴 때부터 키가 작으면 주변으로부터 놀림을 받아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눅이 들었고 결혼에 있어서도 불리하다는 얘기도 듣는다”며 “‘키작은 남자‘가 온라인상에서 고유명사가 됐을 만큼 개인적인 자존감에 따른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토로했다.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모(34)씨도 “아이가 혹시 키가 작으면 어쩌나 걱정이 든다”며 “주변에서는 성장판 검사도 일찍하고 필요할 경우 성장 호르몬 주사도 맞히는 등 일찌감치 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얘기도 듣고 있다”고 말했다.

▲ 가격대별 계급을 나타내는 패딩계급도/사진제공=커뮤니티
▲ 가격대별 계급을 나타내는 패딩계급도 /사진제공=커뮤니티

▲10대들의 명품 플렉스(Flex 돈자랑을 한다는 의미), 자본주의가 낳은 외모지상주의

한 때 청소년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수십만원 대 패딩도 옛말. 수백만 원대를 호가하는 명품 옷차림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고가의 패딩으로 부모들의 시름을 앓게 했던 이른바 ‘등골브레이커 룩’이 한 단계 진화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다. 성인들도 지불하기 어려운 값비싼 명품을 소비하는 10대들이 늘면서 청소년들의 과잉소비 문화가 우려되고 있다.

최근에는 고가의 패딩이 인기를 끌면서 패딩을 가격대로 분류한 ‘패딩계급도’가 등장해 화제가 됐다. ‘패딩계급도’에 나타난 패딩들은 적게는 10만원대부터 많게는 수백만원대까지 다양한 브랜드를 가격대별로 나눠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서도 상위 등급으로 갈수록 10대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상품들이 배열돼 있다.

명품 온라인 쇼핑몰 머스트잇의 구매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명품구매 건수가 크게 늘었는데 10대의 구매건수 증가율이 6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 알바천국이 10대와 20대 42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2020년 기준)에서 1433명에 해당하는 10대 33.6%가 추석 용돈으로 명품을 구매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또 몇 년 전부터는 인터넷방송이나 SNS를 통해 10대들의 명품 ‘하울’(구매한 제품을 개봉하고 평가하는 행위)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10대들의 명품 소비문화가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여기에 또래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이 명품 브랜드의 앰배서더(홍보대사)로 선정되면서 청소년들의 과잉소비 욕구를 부추기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또래 연예인이 착용하는 옷차림에 관심을 갖게 된 청소년들은 또래 집단을 모방하려는 청소년기 성향이 나타나면서 새로운 소비문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소비 능력이 없는 10대들이 부모에게 고가의 명품 구매를 요구하면서 ‘등골브레이커(부모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의미)’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중학생 자녀를 둔 신미숙(42)씨는 “아이들이 조르는데 별수 있나요. 안 입으면 학교에서 왕따당한다고 하니 걱정도 되고 비싼 건 알지만 사줄 수밖에 없어요“라고 했다.

돈을 훔쳐 명품을 구매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9년 한 찜질방에서 훔친 스마트폰으로 은행계좌에서 4000만원 가량을 빼돌린 고등학생들이 붙잡혔다. 이들은 한 달 동안 훔친 돈으로 명품을 사는 데 탕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흥의 한 고등학교 교사 이모(38)씨는 “명품을 갖고 다니는 학생이 늘면서 교내, 절도, 도난 사건도 생겨나고 있다. 아이들이 겉모습을 중시하는 문화가 만연해 지면서 학교 차원의 인식개선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보상자

“못생긴 여자가 여권(女權)운동하는 것을 보면/측은한 마음이 생긴다/못생긴 남자가 윤리-도덕을 부르짖으며/퇴폐문화 척결운동 하는 것을 보면(중략)/못생긴 여자들과 못생긴 남자들을 한데 모아<고(故)마광수 시인의 나도 못생겼지만 中에서...>

매스 미디어는 그 어떤 수단보다 강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게 된 데에는 미디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성인기 자아형성에 궁극적인 역할을 하는 청소년기에 형성된 그릇된 가치관은 결국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차별’이라는 뼈아픈 결과로 남게 된다. 이 때문에 문화나 미디어의 콘텐츠는 신중히 다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디어나 문화의 다양한 분야에서 외모지상주의를 이야기 하고 있다. 청소년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던 웹툰 ‘외모지상주의’는 제목과 같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를 꼬집고 있다. 실제 웹툰에서는 뚱뚱하고 못생긴 남학생이 어느날 잘생긴 외모를 얻게 되면서 두 육체를 오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웹툰은 외모가 열등한 캐릭터가 받는 부당대우나 차별이 일상적으로 등장하면서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웹툰 ‘존잘주의’ 역시 못생긴 외모의 주인공이 혐오와 차별로 얼룩진 실상을 보여준다.

웹툰뿐 아니라 대중가요의 가사에서도 종종 외모 차별을 드러내는 구절이 쓰이곤 한다.

▲ 지코 boys and girls 가사 /사진제공=네이버 가사검색 캡쳐
▲ 지코 boys and girls 가사 /사진제공=네이버 가사검색 캡쳐

인기가수 지코의 곡 ‘Boys and girls’에는 ‘아름다운 여자는 대접받아야 해’라는 가사가 있다.

씨스타에 ‘yeah yeah’의 가사에선 ‘잘생긴 남자들은 다 바람둥이라고 하지만’이라고 쓰여진다. 외모에 대한 예찬을 다루면서 만연해 있는 선입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가사다.

영화나 방송에서도 예쁜 사람은 대접받고 못생긴 사람은 홀대 받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코미디프로그램에서는 종종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의 출연자와 날씬하고 예쁜 외모의 연기자를 대비시켜 유머를 이끌어낸다. 또 영화 ‘미녀는 괴로워’, ‘마스크걸’ 등에서는 못생긴 외모의 주인공이 겪는 혐오와 차별들이 다뤄졌다. 이처럼 미디어에서 외모에 대한 노출이 개인적,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미디어에서의 외모 노출이 수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있다. 연구들은 미디어 내비치는 외모에 대한 평가기준이 개인의 외모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밝히고 있다.

배양효과이론(대중 매체의 현실 구성 효과를 설명하는 이론)을 주창한 연구자 조지 거브너(George Gerbner)는 탤레비전이나 영상매체가 반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거부감이 없이 스며들어 편향적이고 왜곡된 미디어의 세계로 착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별취재팀



관련기사
[新외모지상주의] 3. 외모와의 전쟁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미의 여신, ‘비너스’를 두고 아름다움에 표준이라 말한다. 보티첼리의 명화 ‘비너스의 탄생’에서는 비너스가 실체가 없는 허구의 존재임에도 아름다운 외모를 멋대로 정의하고 재단해 사회의 이상향적 미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화장 좀 하고 다녀”, “안경은 쓰지 말고”, “가슴에 뽕(보정속옷) 넣고 다녀야겠다”비너스가 그랬듯, 성별, 나이, 직급을 막론하고 직장인들은 오랜 시간 ‘직장인 비너스’가 되길 강요받아 왔다.취업 시장에서도 외모는 또 하나의 경쟁력으로 여겨지면서 ‘외모 스펙 쌓기’에 나선 취업준비 [新외모지상주의] 2. 성형공화국의 그늘 “예쁘면 고시 3관왕 하는 것과 같아”, “잘 생기면 다 오빠야” “예쁘고 잘생기면 다 용서돼”현대사회에서 잘 생긴 외모, 예쁜 얼굴은 권력이자 특권이다. 챗 GPT에 예쁘고 잘생긴 외모의 기준을 물었다. 그러자 ‘일반적으로 대칭 있는 얼굴을 말한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멋진 외모의 장점에 관해 묻자 사회적 이점이 있다고 응답한다. 다른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도 했다.반대로 못생긴 외모의 정의를 물었을 뿐인데 챗 GPT는 못생긴 외모로 사회적 편견과 취업 시 불이익이 있다며 비교적 단호한 답변을 내놨다.실제 대한민국 국 [新외모지상주의] 1. 마스크 못 벗는 사회 #지난해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 수원의 한 중학교에 입학한 김모미(가명∙14)양은 코로나 종식 선언을 한 지금까지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체육 수업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도 마스크만큼은 벗지 않는다고 했다. 김양은 ‘마기꾼(마스크+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게 두렵다고 한다. 학급에서 4분의1은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한 채 생활을 한다. 중학교 입학 후 마스크를 벗은 전체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들도 있다고... 김양은 학교에서 외모는 곧 계급이라고 했다. 잘 생기고 예쁜 외모일 때는 친구들과 관계 맺기가 수 [新외모지상주의] 외모콤플렉스에 빠진 대한민국-프롤로그 “우리 엄마는 나한테 한 번도 예쁘다는 말을 해준 적이 없거든? 나는 아무리 못생겼어도 예쁘다고 해줄 거야.”<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 대사中에서>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작가 매미·희세의 웹툰 '마스크걸'이 원작이다.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한다. 드라마는 모미가 BJ활동 중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겪게 되는 파란만장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드라마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대한민국 [新외모지상주의] 5. I love my body “I love my body, that's my body, I love my body 생김새 하나하나 난 꽤나 괜찮아”(화사 I Love My Body 가사 中에서)인기 가수 화사가 야심차게 선보인 솔로곡, ‘I Love My Body’에 등장하는 가사다. 노래 가사 내용 그대로 ‘외모지적’, ‘외모간섭’을 하는 이들에게 강력한 일침을 날리고 있다.지난 7월 베트남의 유명 인플러언서 ‘응우옌’이 자신의 개인 방송을 통해 한국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응우옌은 “외모지상주의는 한국에서 큰 문제다”며 “한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