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미의 여신, ‘비너스’를 두고 아름다움에 표준이라 말한다. 보티첼리의 명화 ‘비너스의 탄생’에서는 비너스가 실체가 없는 허구의 존재임에도 아름다운 외모를 멋대로 정의하고 재단해 사회의 이상향적 미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화장 좀 하고 다녀”, “안경은 쓰지 말고”, “가슴에 뽕(보정속옷) 넣고 다녀야겠다”
비너스가 그랬듯, 성별, 나이, 직급을 막론하고 직장인들은 오랜 시간 ‘직장인 비너스’가 되길 강요받아 왔다.
취업 시장에서도 외모는 또 하나의 경쟁력으로 여겨지면서 ‘외모 스펙 쌓기’에 나선 취업준비생들의 열기가 뜨겁다.
‘성형은 기본’, ‘포토샵(사진 보정)은 필수’, ‘AI사진’의 등장까지... 성형수술뿐 아니라 이력서에 첨부할 프로필 사진 역시 진화하면서 외모 스펙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요즘,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지금 ‘외모’와의 전쟁 중이다.
▲직장인 비너스의 탄생
“가영이는 성형 하지 않은 것치고는 예쁘고 몸매도 좋아, 근데 코랑 앞트임은 제발 좀 하자”
직장인 여성 진가영(가명)씨. 평소 피부질환으로 치료를 받느라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 할 때면 어김없이 “너는 피부가 점점 안 좋아진다”, “뭐 좀 바르고 다녀” 등의 핀잔이 돌아왔다고 했다. 이런 괴롭힘을 6개월 동안 참아오다 회사에 고충을 털어놓았지만 가해자와 화해하라는 기별 없는 해결책만 제시될 뿐이었다. 결국 가영씨는 개선을 기다리기보다 퇴사를 선택해야 했다.
또 코로나가 한창이던 3년 전 인천시의 한 피부과 병원에서는 단체 메신저를 통해 “마스크를 착용하니깐 용모 단정에 신경 안 쓴다. 민얼굴로 다니면 마스크를 벗기겠다”고 갑질해 직장 내 ‘꾸밈 노동’을 강요하는 행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여성직장인 3명 중 1명이 직장 내 외모지적을 경험했다. 직장갑질 119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2022년 10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희롱, 성추행을 제외한 젠더폭력으로 가장 많은 것은 23.1%가 외모 지적이라고 답했고 이중 남성(13.2%)보다는 여성( 36.3%)이 피해 경험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는 외모 비하(여성 22.8%,남성 17.0%) 뿐 아니라 외모 간섭(여성 24.4% 남성 11.4%)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통계에서처럼 직장인들은 팽배해진 외모지상주의 속 일상적인 ‘외모 갑질’과 ’외모통제’에 시달려 오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옷차림과 외모 지적, 칭찬을 빙자한 ‘얼평(얼굴평가)’ 등 숨 쉬듯 내뱉어지는 외모 갑질이 관행처럼 여겨져오면서 문제 제기 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도리어 피해자가 ‘예민한 사람’, ‘MZ라서’, ‘악질 페미니스트’의 꼬리표로 낙인찍힐 뿐이라고 피해자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동자의 인격을 침해하는 괴롭힘이 분명함에도 실제 이를 예방하고 규율하는 정책적인 부분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갑질119 젠더폭력대응특별위원회 소속 김세정∙여수진 노무사는 “성차별적 조직일수록 여성들의 외모뿐만 아니라 말투, 행동, 표정, 사생활까지 모든 것을 평가하고 통제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며 “통제당해야 할 것은 성별 이분법에 따른 편견과 갑질이지 상대방의 외모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모지적이나 간섭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정책, 제도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또 사업주의 책임 강화와 처벌, 직장 내 인식개선을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모도 스펙
외모지상주의는 날로 치열해지는 취업 경쟁률 속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외모도 또 하나의 스펙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취업시장에는 성형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갤럽이 2020년 만 19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외모와 성형수술에 관한 인식 조사에서 ‘취업이나 결혼을 위해 성형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67%가 ‘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 중 남성이 59%, 여성이 73%가 취업이나 결혼을 위한 성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문화가 만연해진 만큼 서류 전형에 응시할 이력서 사진에 공(?)을 들이는 현상도 생겨났다. 최근 몇 년간 프로필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스튜디오들에서는 일명 ‘포토샵’이라 불리는 보정 작업이 필수 요소로 쓰인다. 이력서에 응시할 사진이 서류면접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보는 시각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정을 전문으로 하는 사진스튜디오가 생겨날 만큼 사진 보정은 촬영보다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최근 휴대전화 카메라 성능이 우수해지면서 프로필 사진을 취업준비생이 직접 만드는 사례도 등장했다. 또 자신이 촬영한 초상사진을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입력하면 전문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것과 같은 효과로 인화되는 ‘AI 프로필’이 인기를 끌면서 AI 프로필 사진을 신분증 사진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지난 6월 행정안전부는 본인 확인이 어려운 보정 사진이나 특정 앱의 AI 사진 등이 신분증에 쓰이지 않도록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사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달라고 당부하고 나섰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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