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지난 3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적막했던 대학 캠퍼스가 새 학기가 시작되니 복작거리며 활기가 넘쳐난다.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만나서 얼굴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해야 사는 맛을 느낀다. 대학에 있으며 가을학기 개강하면 첫 시간에 반드시 묻는 말이 있다. 가을은 어떤 계절입니까? 그러면 대다수의 학생이 '천고마비의 계절' 혹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답했다.

다 맞는 말이다! 가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풍요로운 계절, 더위가 한풀 꺾여 선선해 책 읽기 안성맞춤인 계절이다. 그런데 독서는 가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계절' 모두 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필자가 생각하기에 한국의 명품이 몇 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을'이라고 했다. 한국의 가을은 명품이다. 산하가 붉게 물들어 멋진 옷을 갈아입은 풍광, 따사로운 가을 햇살 속에서 은빛 물결 춤추는 갈대밭은 우리 모두를 시인으로 만든다. 가을이 되면 그래서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대학생이면 책을 가까이해야 한다. 그런데 책도 시기에 따라 읽어야 할 책이 따로 있다. 예를 들면,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은 사춘기에 읽어야 많은 것을 느낀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데미안> 중에서).” 사춘기를 넘어 성인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이 글보다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가!

필자는 대학에 들어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강력히 추천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사람이 힘이 없으면 주어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힘이 있는 사람의 지배 밑으로 들어가는 현상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에리히 프롬은 말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부모와 선생님의 관리·통제 밑에서 생활을 하였는데, 대학에 들어오면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가 주어지지만, 주어진 자유를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력을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기간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이다.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지만, 독서는 가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계절 모두 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것을 알고 깨우치며 능력을 키워야 누군가의 지배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가을에 책을 읽으며 느끼는 것도 좋을지 싶다.

▲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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