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다가 문득 문학·음악·도시 모두 동일한 원리가 작동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비극(염세적 사고)이 그리스 정신의 총화로 보았다. 그리고 그리스 비극은 아폴론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의 혼합과 변용의 결과로, 그리스 정신은 이 두 정신세계를 근원으로 탄생했다고 니체는 말했다. 여기서 아폴론(태양, 빛의 신)적인 것은 이성과 지혜를 상징하며 인간세상의 모든 균형 잡히고 합리적인 형상을 의미하고, 디오니소스(술, 광기의 신)적인 것은 인간의 본능에 따른 신비적이고 비합리적 쾌감과 도취를 주는 충동적 현상을 의미한다. 필자가 보기에 아폴론적 이성과 디오니소스적 감정은 고대 그리스 사회뿐만 아니라 현대도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도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아폴론적으로 합리적·과학적·효율적 원리를 기반으로 한 생산의 공간이 필수적이지만, 비합리적·신비적·낭만적 활동을 위한 쾌락의 공간도 있어야 한다. 인간은 생산을 위해서 아폴론 없이 살 수 없지만 동시에 쾌락을 위한 디오니소스가 없다면 배출구가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도시에는 생산을 위한 산업공간도 필요하고 소비·휴식·여가를 위한 쾌락의 공간도 필수적이다. 즉, 인천 남동공단, 부평공단 같은 생산의 공간도 필요하지만 월미도와 구월동 로데오거리 같은 즐거움의 공간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정부정책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따른 생산의 공간에는 많은 관심을 갖고 지원(투자)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비합리성을 추구하는 쾌락의 공간에는 별 관심이 없고 지원도 야박하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비합리적인 존재이며, 항상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종종 자기 방해 행위(self-sabotage)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가 말하기를 '합리적인 병사는 결코 전쟁하지 않고, 합리적인 인간은 결코 결혼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은 합리적으로만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며, 도시도 합리적인 공간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합리성만 추구하려는 욕구, 사람이나 도시를 합리적으로만 만들고자 하는 욕구 자체가 비합리적이다. 아마 도시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합리적 활동과 비합리적 활동이 상생·공존하는 도시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되며, 이런 맥락에서 도시는 (비합리적·비동시적인 활동과 공간의 합리성·동시성을 위한) 타협의 예술이 필요한 공간이다.

▲김천권 인하대 명예교수∙인천학회 고문.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관련기사
[썰물밀물] 하인리히법칙&위험사회 그리고 대한민국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은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 징조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사소한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다(나무위키). 즉, 큰 사고는 우연히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반드시 일정 기간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는데 이런 징조를 사소한 것으로 방치할 때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위험사회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제기한 개념으로 과학기술이 발달함으로써 인간생활의 효율성, 편리성, 신속성 등이 높아졌지만, [썰물밀물] 사람과 도시 얼마 전 발생한 신림동 묻지마 흉기난동, 그리고 며칠 전에 발생한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을 보며, 어쩌다 우리 사회가 불특정 시민을 대상으로 흉포한 범죄가 빈번히 발생하는 도시가 되었는지 불안한 마음이다. 이런 사건들을 접하며 단순한 개인의 일탈에서 발생한 범죄인가 아니면 우리 도시의 구조적 결함에서 나온 문제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인간이 도시를 만들지만, 인간이 만든 도시에 의해 인간이 영향을 받는다. 즉, 사람이 어떤 도시를 만드는가에 따라 사람의 삶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뉴욕의 역사를 논할 때, 맨해튼 한가운데 있는 센 [썰물밀물] 가깝고도 먼 곳, 강화 도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교통 인프라는 필수요소이다. 교통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시장(쇼핑)·교육·여가·휴식 등 기본적인 도시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에는 철도역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고, 자동차 등장 후에는 고속도로를 통해 도시들이 연계되어 발전하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철도·고속도로가 전혀 연결 안 된 지자체가 6곳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인천 강화이고, 나머지는 경기도 연천, 강원도 화천·양구, 경상북도 영양, 경상남도 의령이다.이들 지역의 교통인프라 상황을 간단히 살펴보면 [썰물밀물] 나비를 모으려면 정원을 먼저 가꾸어야 한다 인천일보 창간 35주년을 맞아 '썰물밀물' 필진을 보완하는데 글을 써달라는 제안이 왔다. 글재주가 없는 사람이 정기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엄청 부담스러워 거절하였더니, 인천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느냐는 편집부의 추궁이 있어 칼럼을 쓰게 됐다.칼럼을 준비하면서 무엇을 주제로 써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는데, 필자의 전공이 도시학(urban science)이라 도시를 중심으로 인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했다. 필자는 1991년부터 2019년까지 인하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도시행정·도시개발·도시사회학 등 주 [썰물밀물] 도시는 입지가 경쟁력이다 불도저시장으로 불렸던 김현옥 서울시장(1966∼1970)은 '도시는 선이다.' 구호를 외치며, 당시 350만이 살던 서울의 한강, 여의도와 영동지구 개발을 밀어붙였다. '도시는 선이다'는 구호는 방사형 도로나 외곽순환도로 등을 포함한 도로교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말인데 김현옥과 친분이 두터웠던 소설가 이병주가 처음 썼다고 한다(전주일보, 2017.10.31 기사 참조).도시에서 길, 도로는 중요하다. 그렇다고 도시는 선(길)만 있는 게 아니다. 선이 있기 전에 점이 있고, 점이 모여, 선을 만들고, 선들 [썰물밀물] 가을과 독서 지난 3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적막했던 대학 캠퍼스가 새 학기가 시작되니 복작거리며 활기가 넘쳐난다.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만나서 얼굴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해야 사는 맛을 느낀다. 대학에 있으며 가을학기 개강하면 첫 시간에 반드시 묻는 말이 있다. 가을은 어떤 계절입니까? 그러면 대다수의 학생이 '천고마비의 계절' 혹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답했다.다 맞는 말이다! 가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풍요로운 계절, 더위가 한풀 꺾여 선선해 책 읽기 안성맞춤인 계절이다. 그런데 독서는 가을에만 [썰물밀물] 가을과 독서Ⅱ 100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노년에도 지능과 인지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식은 책을 통해서만 습득되는 것이 아니고, 여행을 통해서도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축적된다. 그래서 누군가 이야기하기를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어 다니며 하는 독서다.”고 말했다. 글은 책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고, 걸어 다니며 보는 세상이 곧 텍스트(text)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투스는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그리고 여행을 하지 않으면 그 책의 단 한 페이지만 읽은 사람이다.”고 말했다.지금 [썰물밀물] 21세기는 도시중심 시대다 역사적 과정을 보면 국가와 도시 사이에는 끊임없는 헤게모니 쟁취를 위한 보이지 않는 투쟁이 이어져 왔으며, 이 과정에서 국가는 전쟁기재의 역할을 해왔고, 도시는 성장의 소재지로 활동했다. 다시 말해, 국가는 군비가 축적되면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도시는 전쟁을 지원하는 성장 도구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 제국이 붕괴하면서 아테네가 함께 몰락했고, 로마제국이 무너지면서 대도시 로마의 쇠퇴를 가져왔다.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국력이 도시 성장을 견인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는데, 이런 원리를 무너뜨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