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인천대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존 케리 美 기후변화 특사, 中 방문
기후변화 카드로 태세 전환 주목

한중 탄소배출 감축 공통 과제
미래에너지 분야 등 발굴 필요

녹색기후 의제 도시외교 중요
인천이 선도, 기후협력 나서야

2018년 트럼프 집권 이후 본격화된 미중 전략 경쟁이 5년째에 접어들었다. 그간 전쟁과 전염병까지 겪으며 강대국 진영 경쟁에서 지칠 대로 지친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출구 찾기에 열심이다. 유럽연합은 지난 5월 열린 G7 회의에서 중국과의 탈동조화가 아니라 위협 분산으로 중국 견제 수위를 조절하고 자신의 '전략적 자율성'을 관철했다. 7월11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냉전 시대로의 회귀 반대와 '중립' 뜻을 재표명했다. 미국 국내에서도 미중 갈등 격화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 반도체 산업협회가 미국 정부에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 추가 조치 자제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100세 현인, 키신저의 방중 메시지

▲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23년 7월 18일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왕이 정치국 위원과 만나는 등 중국 고위인사와의 회담을 통해 대결이 아닌 공존을 지향하는 미중 관계의 필요함을 강조했다. 1970년 미중 화해로 탈냉전의 서막을 열었던 100세 원로 외교가는 미중 패권 경쟁이 3차 세계대전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사진 출처=중국정부 홈페이지
▲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23년 7월 18일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왕이 정치국 위원과 만나는 등 중국 고위인사와의 회담을 통해 대결이 아닌 공존을 지향하는 미중 관계의 필요함을 강조했다. 1970년 미중 화해로 탈냉전의 서막을 열었던 100세 원로 외교가는 미중 패권 경쟁이 3차 세계대전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사진 출처=중국정부 홈페이지

1970년대 미중 화해와 양국 수교의 주역인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7월20일 중국을 깜짝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났다. 키신저는 1972년 마오쩌둥과 리처드 닉스 미 대통령의 만남을 회고하며 세계 평화·번영을 위해 미중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하루 전날 중국 대외정책을 이끄는 왕이 중공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동한 자리에서 “미중 어느 한쪽도 상대방을 적수로 삼은 대가를 감당할 수 없다”라며 “오해를 해소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대결을 피해야 한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국제 정치학계의 거두이기도 한 키신저는 작년 말 영국 보수지 스펙테이터에 기고한 “평화를 위한 추진: 또 다른 세계 대전을 피하는 방법”을 통해 미중 패권 경쟁이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1971년 중국을 극비 방문하여 이듬해 닉슨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역사적인 상하이 공동선언을 성사시켜, 탈냉전의 서막을 열었던 100세 외교가가 이번 방중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의 무게가 크다.

 

기후협력 카드 꺼내든, 미중의 태세 전환

▲ 2023년 7월 18일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가 중국을 방문하여 왕이 중공 정치국 위원과 미중 기후변화 협력을 논의했다. 미중 외교를 지휘했던 그들은 회담에서 기후 협력이 양국 관계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진 출처=중국외교부
▲ 2023년 7월 18일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가 중국을 방문하여 왕이 중공 정치국 위원과 미중 기후변화 협력을 논의했다. 미중 외교를 지휘했던 그들은 회담에서 기후 협력이 양국 관계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진 출처=중국외교부

지정학을 넘어서 기술과 가치 영역으로까지 격화하던 미중 간 날 선 갈등이 조금씩 잦아들면서 두 강대국 간의 싸움 양상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은 글로벌 복합 질서의 재편기에 미래 패권의 향방을 결정할 반도체·배터리·AI 등 핵심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탈동조화에는 지속해서 힘을 기울이되, 지구촌의 지속이 가능한 발전을 제약하는 공동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 협력을 해 나가겠다는 것. 중국 역시 세계 강대국이라는 '중국의 꿈'을 표방하며 주권·영토·국가발전의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겠지만, 미국·서방과의 협력 공간을 넓혀가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가 7월 18일 중국을 찾아 리창 총리 및 세전화 기후변화 특별대표 등과 만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미중 협력 과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메탄가스 등 비 이산화탄소 저감 문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석탄 사용 제한, 삼림 벌채 억제, 개발도상국 기후변화 대응 지원 등이 주 의제였다.

특히 케리 특사는 왕이 위원과의 회담을 통해 기후변화 협력을 통한 양국 관계 재정립에 대한 기대를 표했다. 케리 특사는 “중국과 미국은 기후 협력을 통해 양국의 외교관계를 재정립하고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설 수 있다”라며 “이번 회담은 기후 문제에 대한 대화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더 넓은 관계를 변화시키는 시작이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왕이 위원 역시 “기후변화 협력은 양국 관계의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양국 국민의 인식과 지지, 건강하고 안정적인 양국 관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중 경협의 돌파구, 기후변화 협력 모색 필요

미중 경쟁의 틈바구니에 끼여 녹록지 않은 상황에 놓인 우리의 처지에서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실용 외교에 전력하는 유럽연합과 아세안의 움직임, 대결이 아닌 평화 공존의 필요성을 설파한 키신저의 조언, 그리고 기후변화 협력 카드를 꺼내 든 미중의 태세 전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전략산업인 반도체·배터리 등이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함정에 빠져버렸다.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던 우리의 대중국 수출의 내림세가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반도체 첨단 생산설비의 중국 반입이 어려워지면서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점쳐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대외관계법 신설과 반간첩법 강화로 인해 한중 공동투자 기업의 연구개발 환경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미중 갈등과 진영 논리라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 오고 가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눈을 돌려 미중 모두 환영하는 녹색기후 의제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압력을 자국 산업구조 조정과 신산업 육성을 위한 지렛대로 삼아 왔다. 중국은 2020년 기준 전기자동차 생산 세계 1위, 태양전지 모듈 세계 점유율 71%, 그린팩토리 2121개, 그린 산단 171개, 2만여 종 녹색제품 등 녹색산업의 기반을 구축했다. 무섭게 치솟던 중국의 탄소 배출 증가율도 2010년대에 들어서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석탄화력발전과 전통제조업의 막대한 고탄소 배출 구조로 인해, 중국은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이라는 오명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仁-中해양도시 결연30 주년인 2024년, 한중 녹색협력 선도 기대

한중은 모두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탄소 배출을 줄여나가야 하는 공통의 난제를 안고 있다. 양국은 탄소 배출 감축 대상 업종 및 공정 역시 유사하다. 난관 기술 해결을 위한 공동 연구, 해외시장 개척 등의 협력이 가능하다. 친환경 업종은 아직 견고한 글로벌 공급망이 구축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중 경쟁의 주전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첨예한 안보 이슈를 비껴갈 수 있다. 상호 협력을 통해 수소에너지, 해양에너지, 바이오매스 등 미래에너지 분야 기술 표준의 공동 수립, 청정에너지 설비·공정 기술과 같은 생산자 서비스 등 새로운 협력 분야를 발굴해 나갈 필요가 있다.

2024년은 인천이 환발해 권역의 주요 해양도시인 칭다오, 다롄, 옌타이 등과 우호도시 결연을 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이들 도시는 중국의 수소에너지 주요 시범지이며 동시에 철강 등 고탄소 제조업의 그린 공정기술 도입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전통제조업 중심지역이기도 하다. 인천시가 녹색기후를 의제로 한 도시 외교를 추진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인천이 선도하는 새로운 한중 녹색기후 협력을 기대해 본다.

▲ 정주영 인천대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정주영 인천대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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