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미 국회 미래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장]

지난 30년간 지속된 질서 전환기
미국 주도 탈진영 시대 저물어
냉전 시대 복원의 의미는 아냐

좀 더 적극적인 외교 전략 필요
한국 주도 국제협력 공간 넓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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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19일 중국 시안에서 열린 제1회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 회의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이 참여해 다각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출처=신화망 한국어판

미중 경쟁과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은 시대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지난 3월16일 대만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 세계화와 자유무역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면서 “많은 사람이 세계화의 시대로 돌아가기를 바랄 것이나, 그건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세계화와 글로벌 반도체 분업 체계를 활용해 TSMC를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일군 원로 기업인의 발언이었기에 더욱 주목받았다. 2022년 10월 미국 국가안보 전략보고서에서도 “탈냉전 질서가 명백하게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지난 30여 년간 지속된 질서의 전환기가 도래했음을 모두가 강조하고 있다.

 

세계질서의 대전환과 미중의 치열한 진영 모으기 경쟁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가 2021년에 발간한 2040 미래전망 보고서는 모든 국가가 기존에 구축된 혹은 새롭게 부상하는 정체성에 기반하여 '같은 생각을 가진(like minded)' 그룹과 함께 안보를 추구하게 되고, 이에 따라 세계는 점점 더 분열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중국을 민주주의 국가와 다른 권위주의 국가로 타자화(othering)하면서 오늘의 국제질서를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 경쟁'이라고 규정,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와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미 바이든 정부는 권위주의 공동 방어 등을 의제로 하여 2021년 12월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창립했다. 회의에는 110개국이 초청되었다. 올해 3월29일 제3차 회의가 화상으로 열렸다.

▲ 미 바이든 정부는 110개 국을 초청하여 2021년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창립했다. 올해 3월29일 제3차 회의가 화상으로 열렸다. /사진출처=미 국무부 민주주의 정상회의 홈페이지 및 유튜브

중국 또한 중국 주도의 진영을 구축하면서 미국의 압박에 대항하고 있다. 시진핑 체제 출범 초기 옌쉐통 칭화대 교수는 중국 외교정책이 친구와 적을 다르게 대하기 시작할 것이며, 중국의 부상을 지지하는 국가들에 더 많은 이익을 주어 지지를 확보할 거라고 언급한 바 있다. 2021년 중국 공산당은 창당 100주년을 맞이하여 <뜻을 같이하는(지동도합(志同道合), 중공의 해외친구들>이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은 라오스, 스리랑카, 루마니아, 튀르키예, 인도 등지와 출판 계약도 체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2022년 11월 주중 러시아 대사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은 우리와 뜻이 같은 국가”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G7이 열리고 있던 때 중국에서는 중국·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회의를 열어 중국과 '뜻을 같이하는 친구'의 세를 과시했다. 중국 일대일로의 출발지인 시안에서 열린 정상회의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의 정상이 참여해 운명공동체임을 선언하고 6개국 공동 발전을 위한 협력 구상을 제시했다.

▲ 5월19일 중국 시안에서 열린 제1회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 회의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이 참여해 다각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출처=신화망 한국어판
▲ 5월19일 중국 시안에서 열린 제1회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 회의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이 참여해 다각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출처=신화망 한국어판

 

냉전시대의 도래가 아닌 새로운 시대, 한국 주도의 국제협력 공간 넓혀야!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기반한 자유무역과 탈진영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진영 경쟁은 냉전 시대의 복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중 양국 모두 완전한 탈동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2022년 미중 양국 교역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다수의 국가는 어느 한쪽 진영에 배타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국익 극대화를 위해 미중과의 협력에 모두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들은 선택의 압박이 없는 미래 질서를 원한다. 탈냉전의 종언이 아니라, 새로운 탈냉전의 제2막이 열리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시대에 대한 통찰과 지혜, 그리고 적극적 외교가 필요한 시기이다. 한국은 더 능동적으로 뜻이 같은 국가와의 협력 공간을 넓혀 나가야 한다. 그리고 생각이 다른 국가와의 조화와 협력 역시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새로운 한중관계, 그리고 큰 그림의 외교 전략 필요

국제질서는 탈냉전·세계화의 종언이 아니지만 과거와 크게 다를 것이다. 1992년 수교 이후 지난 30년간의 한중관계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조응해 나가야 한다.

한중의 '핵심이익'과 '다름'을 인정하는 토대에서 지속 가능한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한중은 상호이익을 기반으로 '뜻을 같이하는 문제'를 찾아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기후환경, 역내 평화, 공급만 안정 등 한중은 뜻을 같이하는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탈냉전 질서 2막, 한국의 국가·외교 전략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가지고, 한국의 대중국 정책이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 종합적이고 장기적 관점의 목표와 전략을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시대를 통찰하는 전략적 사고에 기반한 외교가 절실한 시점이다.

▲ 차정미 국회 미래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장
▲ 차정미 국회 미래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장

/차정미 국회 미래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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