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내 쪽방촌 개발은 먼 얘기
집 좁아 화장실 만들 공간 없어
용변 보려면 좁은 골목 지나야
골목길 바닥 대부분 깨지고 부식
취약한 환경에 위생 문제 노출
그럼에도 이들은 꿋꿋하게 버텨
공용 공간에 따로 마련된 화장실을 사용하는 인천 내 5000여 세대. 이들은 어떻게 극한의 환경으로 내몰리게 됐을까.
각자의 사연은 있겠으나 공통분모를 찾자면 사업성을 우선 고려한 도시 개발에 따라 수반된 불평등이다.
모든 도시가 그렇듯 인천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형성된 도시가 노후화하며 새롭게 도시 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진 도시는 '신도시'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신도시'의 존재는 '구도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구도시의 탄생은 그 안에 또 다른 구도시 형성으로도 연결된다. 구도시에서 사업성이 좋은 일부 지역은 선택받아 개발사업이 추진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화장실조차 없는 주택 이외 거처가 모인 환경으로 남기도 한다.
초일류도시 인천의 그늘: 화장실없는 집에 사는 사람들
지난 약 한 달간 살핀 동구, 미추홀구 등 인천 대표적 구도시 내 쪽방촌도 대다수 개발의 호재가 닿지 못한 곳들이었다.
어쩌다 개발 수혜가 찾아온다고 해도 또 다른 구도시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야 할 원주민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미추홀구 학익소로 63번길 일대, 복잡하게 엉킨 전깃줄 아래로 이어진 좁은 골목도 그런 동네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교도소 직원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조성된지 무려 70년이 넘었다. 과거엔 재래식 공동변소를 두고 직원들이 함께 사용하던 것이 지금은 '학익공중화장실'로 탈바꿈한 정도다.
교도소 직원 대신 이제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만 남은 이곳은 낙후된 환경에도 이제껏 변화 없이 자리를 지켜왔다. 근처에 번듯한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설 동안 꿋꿋하게도 버텼다. 빈 집 사이 몇 세대 남지 않은 주민들은 남들은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불편할 공중화장실 이용도 대수롭지 않을 뿐이다.
최근에서야 가로주택정비사업지로 선정돼 재건축을 앞뒀지만, 주민들은 전혀 반기는 기색이 없다. 근처 공인중개소를 찾아봐도 “거긴 팔아도 감정가 600만∼700만원밖에 안 된다”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60대 주민 A씨는 “집에 화장실이 있으면야 편하겠지만 보다시피 여기는 많이 낙후돼있지 않나”라며 “재건축은 한다곤 하지만 또 금방 이주가 될 것 같지도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위생, 안전 문제 떠안아야…“그래도 익숙한 나의 일상”
낮이고 밤이고 용변을 보고 싶을 땐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서야 하는 일상은 이들에겐 그저 익숙한 삶의 일부다.
동구 괭이부리마을 한 60대 주민 B씨는 “바로 옆이 화장실인데 화장실이 집에 있는 거나 다를 게 뭐 있나”라며 “집이 좁아 화장실 만들 공간도 없다. 누가 와서 화장실 만들어준다고 하나?”며 되물었다.
그가 이용하는 공중화장실은 집에서 30초면 닿을 위치에 있는 데다가 좁은 골목 끝에 숨어 있어 거의 '전용' 화장실과 다름없다.
하지만 노년층에겐 이 거리를 오가는 일조차 버거울 때도 있다. 특히 좁은 골목에는 가로등도 없어 밤에는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가야만 한다. 수십 년 된 동네의 골목길이 성할 리 없듯 바닥도 대부분 깨져있었다.
취약한 환경 탓에 안전과 위생 문제에 항상 노출된 상황이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19가 극성이던 지난 3년여간은 이들에게 더욱더 가혹한 시간이었다.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을 경우 외출이 전혀 불가능했는데, 이때 관공서로 “집 밖에 못 나가면 화장실은 어쩌나”라는 질문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인적 드문 골목인 만큼 범죄의 위험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용변은 때론 불청객 같아서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나 한밤중에도 찾아오기 때문이다. 굳어지는 취약 지역이란 이미지도 이들을 더 소외당하게 하는 요소다.
그럼에도 이곳의 이들은 여전히 버틴다.
동구 송현동에서 만난 한 노인은 “이런 곳 많다. 다른 동네 내 친구가 있어 아는데 거기도 다 그렇게 산다더라”며 “화장실이야 다 바꿔줘서 깨끗하다. 안에서 밥도 먹겠던걸?”이라며 웃었다.
/글·사진 정혜리·변성원 기자 hy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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