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반대편 좁은 골목길
10평 남짓 공간 화장실 언감생심
현관이 곧 욕실…살림살이 뒤엉켜
허름한 공중화장실 최소한 복지
무허가 건물에 정화조 설치 불법
“화장실은 사치…떠날 마음 없어”
없는 사람들의 악순환 되풀이
“못나서 여기서 계속 사는 거죠. 용변은 공동화장실, 샤워는 집 안에서 해결합니다. 겨울이요? 겨울엔 추워서 목욕탕으로 가야 해요.”
지난 21일 찾은 인천 미추홀구 학익소로 63번길. 넓지 않은 도로를 경계로 한편에는 아파트 단지가, 반대편에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집들이 조화롭지 못하게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심 속 이질적 풍경을 띄는 골목 속, 집 한 채는 이번 장마를 이기지 못하고 벽에 균열이 생겨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껍데기만 남은 빈집이 문 없이 검은 입을 벌린 채였고 닫힌 문들에는 해를 넘긴 수도요금 고지서가 마구잡이로 끼어있기도 했다.
그리고 집 틈에 자리 잡고 있는 '학익마을공중화장실'. 화장실조차 들어설 여유 없는 집에 사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이 골목 최소한의 복지다. 약 37년 전, 미추홀구도 아닌 '남구'이던 시절 설치돼 한차례 개조 후 주민 등을 위한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골목에서 만난 신용화(70) 씨는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를 바라보며 “못나서 산다”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개발 앞두고 내몰릴까 '위태'
“요즘 세상에 그런 집이 어딨습니까?” 화장실 없는 세대가 있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돌아오는 대답이다.
신 씨의 집은 바로 '그런 집'이다. 일본강점기엔 교도소 직원들이 사는 동네였다던 이곳은 해방 이후 가난한 이들에게 매각됐다.
화장실도 끼어들지 못한 10평 남짓한 신 씨의 집에선 현관이 곧 욕실이다. 세탁기 옆에 놓인 분홍색 세숫대야와 녹색 플라스틱 의자, 수도꼭지에 걸린 목욕용 타월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이 '욕실'서 신발 벗고 한발만 내디디면 거실 겸 주방이다.
골목을 지키는 다른 이웃들도 마찬가지다. 이젠 집에 화장실 하나 둘까 싶어도 '내 집이 아니라서', '집이 좁아서' 등 주저할 이유가 가득하다. 화장실은커녕 재건축이 예정돼 조각 집에서조차 내몰릴 위기다.
인근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동인옥(67) 씨는 “이곳은 가로주택정비사업지로 재건축이 예정돼 있다”며 “사업대상지에 110여 가구가 살지만 빌라를 제외하면 40여 가구는 쪽방에서 산다”고 설명했다.
괭이부리마을로 알려진 동구 만석동 일원도 사정이 비슷하다.
동구 화도진로 186번길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집들과 공중화장실을 발견할 수 있다.
만석동 9-608에 있는 화장실은 성인 한명이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 정도로 좁은 50㎝ 폭의 벽 사이를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각 칸이 모두 자물쇠로 잠긴 상태였다.
만석동에서 60여년을 살았다는 주민 A(69) 씨는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남·여학생이 모일 수도 있어 화장실을 잠가두고 집마다 열쇠를 갖고 있다”며 “움직이는 게 불편하지만 깨끗하게 쓰면 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 거나 다름없다. 재래식일 때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이곳 괭이부리마을에도 개발 소식이 들려온다. 인천시는 예산을 투입해 공공임대주택 등을 짓는 개선사업을 검토 중이다.
시 관계자는 “괭이부리마을이 환경이 워낙 낙후되어있고 안전문제도 있는 만큼 시 차원에서 개선할 방안을 검토 중인 단계”라고 말했다.
“화장실은 사치”…무허가 쪽방촌 사람들
괭이부리마을과 조금 떨어진 동구 송현사거리 일원에는 또 다른 단면이 있다. 도로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자리 잡은 쪽방촌 주민들도 공중화장실을 이용한다. 화장지는 개별 지참이다.
빈집도 많은 이곳은 대다수가 노후한 무허가 건물인 터라 정화조 설치가 불법이다.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고 겨울이면 직접 기름을 사다 보일러를 돌리곤 한다.
통장을 맡던 때부터 직을 넘겨준 지금까지 10년 넘게 공중화장실 관리를 맡아오고 있다는 주민 B(63) 씨도 같은 상황이다.
화장실도 없고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좁은 집이지만 이곳을 떠날 마음은 없다. 없는 개발소식이지만 있다고 해도 반갑지 않다. 이들에게 새 보금자리를 찾는 건 아득한 일이다.
B씨는 “없는 사람들은 악순환”이라며 “여긴 개발이 된다고 해도 문제다. 평당 300∼350만원이면 7평짜리 집에 사는 우리는 그 돈으로 월세 보증금도 못 낸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로 기름이 비싸 겨울에는 씻을 때나 한 번씩 돌리며 버텼다. 그저 정부가 수리규제라도 좀 풀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정혜리·변성원 기자 hy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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