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100년 1983년 '스포츠 관문' 인천 전국에 알렸다

10월 6~11일 열려 1만7548명 참가
체전 성화, 항상 강화도 마니산서 채화

인천공설운동장서 개·폐회식 등 진행
연일 비내려 아쉬움…'국화체전' 유명
대회 중 '아웅산 폭발테러 사건' 비보

올림포스호텔 등 귀빈 숙소로 사용
제일제당 설탕으로 첫 스포츠 마케팅
인천시, 2027년 전국체전 개최 계획
인천 문화 40년사

1983년 개항 100주년을 맞은 해에 인천에서 열린 전국체전이다.

인천이 직할시 승격 후 개최한 첫 전국체전으로 특별히 경기장 시설 확충과 경기운영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축구와 야구의 도입지로 한국 스포츠의 관문의 인천의 역사를 전국에 각인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 1983년 제 64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 입장권.
▲ 1983년 제 64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 입장권.

인천에서 열린 제64회 전국체육대회는 1983년 10월 6일에서 10월 11일까지 열렸으며, 전국 13개 시도 및 이북 5도와 6개 해외동포 팀을 포함한 1만7548명의 임원 및 선수가 참가했다.

참가 선수들은 '굳센 체력, 알찬 단결, 빛나는 전진'이라는 구호 아래 일반부, 대학부, 고등부 종별에서 총 31개 종목에서 열띤 경쟁을 펼쳤으며, 기존의 모범 선수단상이 질서상으로 변경되고, 입장식 때 자유로운 보법으로 행진하였다.

대한체육회가 주최하는 전국체전은 전국 각 시·도를 중심으로 우정과 화합을 목적으로 개최하는 스포츠 축제이자 국제대회를 제외하면 국내에서는 가장 권위가 높은 공식 대회다. 1920년 당시 조선체육회로 불렸던 대한체육회의 창립 당시부터 시작되었던 종합대회이며, 조선총독부가 이전의 헌병경찰통치를 끝내고 문화통치로 전환하면서 조선인들의 체육증진과 조선의 화합과 단결이라는 취지에 따라 전국 시도를 중심으로 체육대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국체전의 시초였다.

▲ 제 64회 전국체육대회 성화 봉송 모습.
▲ 제 64회 전국체육대회 성화 봉송 모습.

전국체전의 성화는 항상 인천 강화도 마니산에서 채화된다. 전국체전을 앞둔 시기에 마니산 참성단에서는 하늘에 전국체전 성화 채화를 알리는 제사를 지낸 후 채화한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단군에서 찾고 단군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가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참성단이기 때문에 여기서 채화한다. 마치 올림픽을 앞두고 아테네에서 성화를 채화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인천은 1983년 64회 이전에 경기도 인천시로서 1964년(45회)과 1978년(59회) 두 차례 전국체전을 개최한 바가 있었다. 1964년 45회 대회는 개항 82년만의 첫 대회로 동경올림픽과 맞물려 예년에 비해 한 달 정도 앞선 9월3일부터 8일까지 15개 경기장에서 열렸다. 26개 종목에 참가한 선수단은 1만5000여 명으로 육상과 역도에서 각각 1개씩의 한국신기록이 나왔다. 매일 내리다시피한 비로 진흙탕 경기가 속출하는 등, 이 대회는 아쉽게도 비로 시작해서 비로 끝난 '비〔雨〕체전'으로 기억된다. 시가 부족한 숙박업소의 해결을 위해 도입한 '선수단 민박'은 큰 화제를 모았는데, 1250여가구에 이르는 민박유치 가정은 선수들의 먹거리와 잠자리 해결 이외에도 열띤 응원과 귀향선물 꾸러미 등을 선사해 미담 꽃이 만발했다. 인천상공회의소는 민박유치 가정에 쌀을 방출미 값으로 특배하고 쇠고기·계란·우유 등도 싼값에 공급하기도 하였다. 1978년 59회 대회는 10월12일 개막하여 열전 6일에 들어갔는데, 이 대회는 정부수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치러졌다. 27개 종목에서 자웅을 겨룬 대회 선수단 규모는 1만2천여 명으로 인천시는 성공체전을 위해 숭의종합경기장의 스탠드를 확장하고 실내수영장을 비롯해 사격장과 승마장, 궁도장 등 4개 경기장을 새로 지었다. 이 대회는 특히 '국화체전'으로 유명하였는데 인천의 거리마다 국화화분과 꽃탑으로 치장하여 매머드 국화전시장을 방불케 하였는데, 대회기간 중 사용된 국화 화분은 5만분이었다 한다.

▲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이 그려진 메달.<br>
▲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이 그려진 메달.

인천시가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로 격상된 직후인 1983년은 인천이 개항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였다. '화합된 새기상, 다져진 새질서, 펼치는 선진조국'의 슬로건을 내건 64회 대회는 뜻밖에도 '아웅산 폭발 테러사건'으로 얼룩지게 되는데, 모든 경기가 순조롭데 진행되던 10월 9일 버마(현 미안마)로부터 비보가 날아들었다.

1983년 전국체전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계양산 기슭에 벨로드롬 경기장에서 사이클 경기가 열렸으며 개·폐회식, 육상, 축구 등이 열렸던 인천공설운동장 (추후 '숭의종합운동장'과 '숭의종합경기장' 등으로 혼용되어 사용됨)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작업이 이루어졌다. 향후 숭의종합경기장이 2008년 6월 철거되기 전까지 인천 스포츠의 중심으로 위상을 떨쳤다. 1936년 개장한 후 숭의야구장과 함께 수차례의 전국 체전과 프로 스포츠의 홈구장으로 사용되는 등, 인천의 대표 운동장으로 자리매김하였지만, 2002년 FIFA 월드컵에 맞춰 신축된 인천 문학 경기장으로 영광을 넘기며 프로 야구단의 훈련장이나 국내 경기용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2008년 6월에 철거되면서 2012년에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주요 실내경기들이 열린 도원체육관은 1975년 인천실내체육관으로 개관한 이후 2006년 인천삼산월드체육관이 지어지기 전까지 인천지역의 사실상 유일한 실내 체육 경기장이었다.

▲ 제 64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의 볼거리 '카드 섹션'.
▲ 제 64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의 볼거리 '카드 섹션'.

1983년 전국체전을 앞두고 경기도경찰국과 도로교통안전협회 경기도 지부는 공동으로 인천 지역 교통 안내서를 발행하여 숙소안내, 경기일정, 경기장 안내도가 자세하게 소개하기도 하였다. 체전에 참가한 각 시도 지사와 시장을 비롯해 국정자문위원, 교육감, 대학 총장, 신문사 사장 등 주요 귀빈들의 숙소를 위해 올림포스 호텔, 국제선원호텔, 백제호텔이 제공되었다. 인천 중구 신흥동 소재 제일제당주식회사는 전국체전을 맞아 자사 제품인 설탕 봉지에 '참가 선수단 환영' 광고를 넣어 시판하였는데, 다방 등지에서 주로 썼던 7g짜리 흰색 설탕을 담은 봉지로 지역기업이 스포츠대회를 통한 광고 홍보에 투자한 스포츠마케팅의 효시라고도 평가 받을 만하다. 개회식의 가장 큰 볼거리는 식전 행사와 카드섹션으로 인천의 수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였으며, 당시 체전 역사상 화려한 개회식으로 평가받았다. 1983년 전국체전 이후 인천은 1999년 제80회와 2013년 제94회, 두 차례의 전국체전을 개최하게 된다. 1999년 제80회 인천대회 때는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경기장별 경기정보를 서비스한 대회로 당시에는 각 경기장의 기록을 취합해 일일이 수기로 입력해 제공하는 초보 수준에 불과했지만,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에서도 제공되지 않았던 서비스라는 점에서 가히 획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2013년 제94회 인천대회는 기존 IT기술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제공하여 역시 인천이 IT체전의 선두주자라는 평을 받을 수 있었다. 가히 인천이 1983년 전산시스템 최초 도입, 1999년 홈페이지 정보 서비스 제공, 2013년 다양한 스마트폰 앱 소개 등의 시대 흐름에 부응한 IT 혁신 기술을 스포츠대회 운영에 접목시킨 선도 도시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국제천의 성공적인 운영 노하우와 경험은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의 성공적인 운영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

현재 인천시는 2027년 전국체전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 한다. 전국체전과 같은 대형 스포츠행사를 개최하게 되면 지역 내 스포츠시설과 각종 인프라 확충을 통해 주민의 생활환경 개선과 대회개최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의 혜택을 얻는다.

/인천생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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